나랏돈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이도록 사전에 사업을 평가하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가 도입된 지 2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수정 보완을 거친 결과, 지금은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예타 권한을 쥐고 있다. 그러나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각 지역 또는 사업 주무 부처에 총액을 정해주고 개별 사업에 대한 사업성 평가는 위임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다.
예비타당성조사(예타)는 대규모 신규 공공투자사업에 대한 사전 타당성 검증해 재정효율성이나 사업성을 평가함으로써 예산낭비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최초로 예타 제도가 도입된 것은 김대중정부 시절인 1999년 4월이다. 정부가 '공공건설사업 효율화 종합 대책'을 발표했는데, 여기 예타제도 도입안이 포함됐다.
예타 제도 도입 이전에는 각 부처가 주관하는 타당성조사에 근거해 예산편성이 이뤄져왔다. 그러나 사업을 담당하는 부처가 타당성조사를 주도하면서 신뢰성 문제가 부각됐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1998년 기획예산위원회(현재 기획재정부로 통합)와 건설교통부(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공공사업효율화추진단'이 구성됐다.
이후 2004년 '총액배분 자율편성'(Top-Down) 제도가 도입됐다. 예산당국이 사전에 분야별·부처별 지출한도를 각 부처에 통보하면 부처별로 지출한도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부처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살려 예산편성의 효율성을 기여하고, 재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자율성 확보 효과는 미미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기재부가 각 부처의 모든 세부사업에 대해 사업추진여부, 예산 규모의 적정성을 재검토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2년 뒤인 2006년 국가재정법이 제정되면서 제도가 정식으로 법제화됐다. 예타 대상이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건설공사가 포함된 사업, 지능정보화 사업, 국가연구개발사업 등으로 명시됐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예타 과정에 지역간 균형발전과 다양한 사회적 가치 실현, 경제·사회적 여건 변화가 반영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따라서 지방균형 안배를 위한 개편이 이뤄졌다.
2019년 기재부는 종합 평가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평가 비중을 다르게 적용하는 안을 내놨다. 비수도권의 경제성 평가 비중을 5%포인트(p) 줄이는 대신 지역균형발전의 비중을 5%포인트 늘렸다. 평가비중은 사업유형별로 경제성(25~50%), 정책적 타당성(25~75%), 지역균형발전(25~35%) 등이다. 수도권의 경우 경제성(60~70%)과 정책성(30~40%)만으로 평가한다.
또 예타 조사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에 따라 조사기간 단축방안도 도입됐다. 예타사업 신청 전 사업 주무부처의 사전준비 절차를 강화해 자료요청·제출 시기 단축했다. 또 예타 조사기간을 1년 이내로 단축(철도는 1년 6개월)하기로 했다.
예산당국이 예타 권한을 쥐고 각 부처의 개별 사업을 좌지우지해온 우리나라와 달리 주요 선진국들에선 세부적인 사업별 예산은 각 부처가 알아서 판단한다. 이른바 '총액배분' 방식을 통해서다.
연방제국가인 미국의 경우 교통 관련 등 건설사업에 대해 연방정부가 예산 총액을 각 주로 나눠주면 주 정부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집행한다. 각 연방부처와 기관들이 독자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형태다. 구체적으로 각 지역의 광역계획기구(MPO)는 4년 단위의 단기교통개선계획(TIP)을 수립하는데 이때 우리나라의 예타와 비슷한 사전타당성 평가 등의 과정을 거친다.
영국도 각 부처에서 부처별 총량 내에서 자율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총액배분·자율편성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대신 사업 계획은 이른바 '관문심사제도'를 통해 단계별로 관리한다. 각 단계에서 정한 기준을 통과해야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방식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유사한 사전평가제도를 운용하지만, 부처별 평가 방식으로 진행된다. 각 소관부처에서 사전 평가를 시행하고 타당성이 확보된 사업에 대해 예산을 신청하는 일괄예산 신청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정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우리나라가 해외 주요국들과 달리 중앙예산기관이 직접 예타를 수행하는 것은 예산 편성 과정 전반에서 부처의 자율성보다는 중앙예산기관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는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