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임기를 마무리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재임기간을 돌아보며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계엄 직후 대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이임식 후 기자들을 만나 "계엄사태 직후 하나님이 나를 이 일을 하라고 보내셨다고 느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계엄 직후 외신 대응과정에서 전화가 많이 왔다"며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작동하면 경제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메시지를 외신 인터뷰에서 전달했고 생각보다 잘 작동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 오래 있었던 경험과 관계가 도움이 됐다"며 "그 부분은 제일 많이 기여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후 상황이 악화하자 "헌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이 이어져 답하기 어려웠다"며 당시 부담도 함께 언급했다.
힘들었던 순간으론 2024년 한은이 조기 금리인하에 실기했다는 비난을 받은 때를 꼽았다. 이 총재는 "한동안은 왜 금리를 안 낮추냐고 비판받았고 지금은 반대로 금리 때문에 환율과 부동산시장이 올랐다는 얘기를 듣는다"며 "양쪽에서 비난받는 걸 보니 금통위원들이 중간으로 잘 결정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통화정책을 둘러싼 '딜레마' 평가에 대해선 "금리를 변동하지 않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결정"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표현은 마치 뭘 해야 되는데 못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며 "금리를 안 올리는 것도 굉장히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은 상황이 매일 바뀌고 있어 방향을 정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며 "중동정세와 인플레이션, 성장흐름을 함께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동산문제에 대해서는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이 총재는 "부동산문제는 이번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고 정책을 오래 지속해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며 "젊은 사람들이 집을 못 구하는 문제는 저출산과 사회갈등, 미래 투자위축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된 '서학개미' 발언과 관련해서는 "지금도 다시 하라면 같은 취지로 말했을 것"이라며 "내국인 해외투자가 환율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고 이후 국민연금 해외투자 등이 공론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 11월 환율상승의 원인으로 청년층 해외주식 투자를 지목했다가 논란이 됐다. 당시 그는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근접한 이유를 한미 금리 차가 아닌 해외투자 확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임기간 전반에 대해서는 "통화정책은 누군가 이익을 보고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구조라 성적을 매기기 어렵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퇴임 이후 계획에 대해서는 "연구뿐 아니라 경제평론과 자문을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대학 교수직 제안도 오는데 강의하면 성적을 매기는 게 싫어서 지금은 안 가려고 한다"며 "당분간 국내에 있고 3년 취업제약이 있어서 해외에서도 좋은 제안이 있으면 비교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 유튜브채널 개설계획 보도에 대해서는 "농담한 것을 진담처럼 신문에 쓴 것"이라면서 "어떤 매체를 통해 얘기할지는 어떤 메시지를 줄 거냐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만히 있으면 알아주는 세상이 아니다"라며 "앞으로도 필요하면 계속 메시지를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