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날리던 이 남자, 이제 농협과 손잡고 '큰 판' 벌린다

익산(전북)=정혁수 기자
2026.06.15 09:19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이석형 원장 인터뷰

이석형 원장은 인터뷰 내내 때론 유쾌한, 때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의 농산업 미래비전과 농업혁신 방안을 설명했다. /사진= 정혁수 기자

전남 함평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 나비 한 마리가 대한민국 농업 미래를 향해 다시 날갯짓을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이석형 한국농업기술진흥원장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함평나비축제를 떠올린다. 첫 행사가 열린 1999년만 해도 "나비로 무슨 축제냐"는 비아냥이 컸다. 그러나 그는 나비를 지역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었고, 함평은 명실상부한 '나비의 고장'이 됐다. 올해 함평나비축제(4월24~5월5일)에는 전국에서 23만6000여명이 다녀갔고, 입장료 수입만 8억3천만원을 기록했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황금박쥐상 논란이다. 2008년 함평군은 지역에서 발견된 황금박쥐 162마리를 기념해 '순금 162kg'을 들여 황금박쥐상을 제작했다. 중앙·지방언론 할 것 없이 '30억원짜리 전시행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고, 시민사회단체도 뭇매를 때렸다. 하지만 지금 황금박쥐상은 지역 대표 볼거리가 됐고, 올초 금값 급등으로 황금박쥐상의 자산가치는 460억원대를 웃돌았다.

한국농업기술진흥원과 농협중앙회는 지난 달 26일 전북 익산 농진원 실용화홀에서 이석형 원장과 박서홍 부회장 등 양측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업무협약식을 갖고 농산업의 혁신 성장과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식을 체결했다. /사진=한국농업기술진흥원

남들이 보지 못한 가치를 먼저 발견하고, 그것을 지역의 미래 자산으로 연결한 '이석형의 힘' 이었다. 그는 "난 남들이 다 괜찮다고 하는 아이템은 이미 레드오션(Red Ocean)이고, 주변에서 '저놈 미쳤네'라고 하면 그건 블루오션(Blue ocean)이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석형 원장은 14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농업 현장에는 스마트팜, 바이오(Bio) 소재, 푸드테크(FoodTech), 디지털 농업, 인공지능(AI) 등 이미 수많은 첨단기술이 존재한다"며 "문제는 기술이 연구실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으로 이제 기술과 현장, 시장이 하나의 흐름으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함평에서 나비를 관광산업으로 만들어 냈다면, 이제는 농업기술을 산업으로 연결하겠다는 각오다. 그는 "우리에게 '좋은 기술' 보다 중요한 것은 '농민의 소득으로 연결되는 기술'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농협과 협력을 강화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농진원이 농업현장에 필요한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면, 농협은 전국 최대의 현장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농촌진흥청 등 연구기관에서 개발된 첨단기술이 농협을 통해 농촌 현장으로 확산된다면 농업 혁신의 속도는 훨씬 빨라질 수 있다고 했다.

‘시원한 옷차림’ 실천 운동에 나선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임직원들이 활짝 웃고 있다. /사진=한국농업기술진흥원

양측은 이를 위해 최근 '농산업의 지속 가능한 혁신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운영되는 개방형 혁신 프로그램(엔하베스트엑스·NHarvestX)은 유망 농산업 기업을 대상으로 기술 실증, 맞춤형 자문, 민간 투자, 현장 견학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창업 초기 기업이 농업 현장에서 기술을 검증하고, 사업화 기회를 넓힐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또 생산과 가공, 유통, 체험이 연결되는 6차산업 활성화는 물론 현장 중심의 혁신을 추진함으로써 농민에게는 새로운 소득 기반을, 농업·농촌에는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어 간다는 각오다.

이 원장은 요즘 구성원들에게 '1톤의 생각보다 1그램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기술도 현장에서 활용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농진원의 우수 기술과 사업이 농업인과 기업의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앞장서 실행력을 높여 나가겠다고 했다.

그는 취임후 매일 오전 9시 전 직원과 함께 국민체조를 실시한다. 날이 더워지면서 남녀 직원들에게 여름철 반바지 등 자유복장을 권한 것도 그의 실용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딱딱한 공공기관 문화보다 활기찬 조직문화를 통해 혁신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메시지다.

그는 농진원의 역할을 '농업기술과 현장을 연결하는 혁신 플랫폼'이라고 규정했다. 농업에는 이미 우수한 기술과 품종, 지역 특산자원, 유망 기업 등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만큼 이를 새로운 산업과 시장으로 연결하는 상상력과 실행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농진원은 올해 농식품 분야 AI 응용제품 신속 상용화 지원사업(700억원 규모)을 통해 스마트농업(축산 등), 푸드테크, 그린바이오 분야의 AI 기술 상용화를 추진한다. 또 9월에는 1000억원 규모의 지능형 농기계 실증단지(2028년 완공)를 새만금부지에 착공할 계획이다. 중동사태 등으로 인한 조사료 수급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조사료 종자 생산단지도 조성한다.

이석형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원장이 지난 4월27일 전남도청 서재필실에서 전라남도, 전남친환경농업협회와 '탄소농산물 인증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체결하고 기념사진 촬영을 함께 했다. /사진=한국농업기술진흥원
이석형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원장이 미래농업과 농산업 혁신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정혁수

이석형 원장은 "농진원은 앞으로 농업인과 국민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농산업 혁신 플랫폼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며 "농업인과 국민에게는 신뢰받는 기관으로 대한민국 농업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약력> △1958년생 전남함평 △전남대 농학과 △전남대 총학생회장 △KBS 농어촌PD △함평군수 3선 △국가균형발전위 지역개발전문위원 △대통령직속 농어업특별대책위 자문위원 △2010년 곤충산업발전포럼 공동위원장 △밀알중앙회 총재 △산림조합중앙회 회장 △한국협동조합협의회 회장 △한국농업기술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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