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참맛? 맞서지 않고 동행하는 것"

김고금평 기자
2015.10.03 03:10

[인터뷰]8집 내고 전국투어 나선 재즈보컬리스트 웅산…"참여형 무대 계속 이어갈 터"

최근 내놓은 8집 '템프테이션'에서 촘촘한 연주와 튀지 않는 보컬로 전체 균형을 맞춘 재즈보컬리스트 웅산. 그는 "프러듀서로 참여하다보니, 내 개인적인 보컬 색보다 전체 사운드의 균형에 초점을 맞췄다"며 "대중과 예술성의 접점을 찾는 것도 숙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사진제공=포니캐넌

그가 나타나면 재즈는 팝이 되고, 난해한 선율의 언어는 일상어가 된다. 재즈하면 손사래부터 치는 이들이 ‘그’를 만나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믿음직한 가창력은 기본, 무대 초반부터 객석을 스탠딩으로 만드는 흥겨운 흡입력은 필수, 재치있는 입담과 수려한 용모는 덤으로 포장된 국내 3대 재즈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인 웅산(본명 김은영) 얘기다.

그가 최근 8집 ‘템프테이션’(Temptation)을 내고 전국 투어에 나선다. 새 음반은 첫곡 ‘유즈 미’(Use Me)부터 귀를 낚아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주에 상큼한 그루브(리듬감)가 얹혀 귀와 심장을 포근하게 간질이는데, 연주의 결이 촘촘하기 이를 데 없다.

이 펑키한 리듬을 지나면 팝과 솔(Soul)의 경계를 아슬하게 넘나드는 ‘더 룩 오브 러브’(The Look of Love), 듣자마자 바로 일어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겟업, 스탠드업’(Get up, Stand up) 등 명곡을 재해석한 그의 프러듀싱 능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웅산은 작곡가로 ‘섬데이’(Someday) 등 두 곡을 만들고, 프로듀서로 모든 곡을 직접 선곡하며 최강 뮤지션들을 합류시켰다. 리 릿나워(기타), 네이던 이스트(베이스) 등 세계 재즈계에 이름난 뮤지션들이 웅산이라는 이름 앞에 몰려든 것이다.

지난해 8집 녹음 전, 성대에 용종이 생긴 웅산은 이 때문에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재즈가 극복하는 음악이 아니라 동행하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사진제공=포니캐넌

“사실 이 음반은 라이브처럼 한 번에 녹음했어요. 훌륭한 연주자들의 기가 막힌 녹음이었죠. 제가 4집부터 프러듀싱에 참여했는데, 그때 믹싱 작업만 4번이나 엎으면서 사운드에 대한 개념이 많이 생겼어요. 평소 대중과 예술의 밸런스에 대한 고민을 아주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 음반은 그런 고민의 끝에 서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음반 작업을 시작한 건 지난해 7월이지만, 두 달 전 쯤 그의 목엔 폴립이 생겼다. 일정한 음을 낼 때 생기는 음이탈로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웅산이 아니면 수술하라고 할텐데”라며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디테일에서 나오는 그의 소리를 아까워한 의사의 어려운 결정이었던 셈.

“녹음 직전에 수술할 필요는 없다고 해서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어요. 제 목에 폴립이 있다는 걸 알고나선 필요 이상의 욕심이나 의지에 집착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초창기 음반 작업에선 거의 절규하듯 노래하며 욕심을 냈다면 지금은 하늘에 맡기듯 자연스럽게 이끌려가는 편이죠. 바람에 맞서려고 하지 않고, 바람과 동행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그는 재즈를 이해했다. 10년 전 만하더라도 재즈가 가진 성향을 이기고 넘어서기위해 강한 것을 단련시키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부자연스러운 것을 멋있게 포장하는 걸 거부하는 음악이 재즈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는 것. 그는 “아무리 멋진 옷을 입어도 재즈의 리듬을 타지 못하면 겉돌 뿐”이라고 했다.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깨달음의 미학은 무대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웅산은 재즈가 소수의 별난 음악이 아닌, 다수의 놀이라는 점을 의식해 새 음반 발매 전국 투어도 시골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가는 일정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지난해 연말 세계적인 스무드재즈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와 협연하는 웅산.

“얼마 전에 경기도 포천의 한 성당에서 (기타리스트 제안으로) 깜짝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개런티도 없고 재즈를 모르는 관객 200명이 모인 자리에서 저와 기타 하나만으로 감당해야했던 공연이었죠. 열악한 환경에서도 관객이 우리 노래와 연주에 열광하면서 순간 하나가 됐는데,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최고의 광경이었어요. 불교 출신인 저와 가톨릭 신자인 관객들의 종교는 달라도, 재즈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 시간이었어요. 그걸 보니, 재즈를 모른다는 게 공연장의 배제 요소가 될 수 없더라고요.”

작은 성당 공연은 재즈가 어떻게 대중화에 이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웅산은 “재즈는 자기만족이 큰 음악인데, 나는 함께 가자는 의미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며 “그들은 재즈가 필요한 게 아니라, 대화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즈가 좀 더 ‘대중 속으로’ 가기위해 그는 노래를 들려주지 않고 나눈다. 나눔은 가슴속에 품은 뮤지션이 열정을 토해내고, 그 열정을 관객이 이어받는 순환고리에서 생성되는 연결일지 모른다.

지난 9월9일 거창에서 시작된 전국투어는 서울(7일 코엑스 오디토리움), 창원, 대구, 강릉, 제주, 당진을 지나 12월30일 부산에서 막을 내린다. 내년 데뷔 20주년을 앞두고 그가 새롭게 각성한 재즈의 참맛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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