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9개월의 기다림이다. 지난 2022년 부산 콘서트 이후 멈춰있던 방탄소년단(BTS)의 시계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지난 20일 정규 5집 'ARIRANG'(아리랑)의 발매와 함께. 혹자는 '군백기(군대 공백기)의 타격이 있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방탄소년단의 파급력은 일시적이지 않다. 세계 대중문화의 지형도를 이끌어가는 탄탄한 한 줄기, 아니 거대한 파도 그 자체로 자리매김했다.
성적표가 이를 증명한다. 'ARIRANG'은 발매 첫날 한터차트 기준 398만 장이 팔려나갔다. 지난 2020년 'MAP OF THE SOUL : 7'(맵 오브 더 소울 : 7)이 일주일에 걸쳐 세운 337만 장의 역대 최다 기록을 단 하루 만에 갈아치웠다. 글로벌 차트도 마찬가지다. 88개국 아이튠즈 '톱 앨범' 1위, 타이틀곡 'SWIM'(스윔)은 90개국 '톱 송' 1위를 찍었다. 견고한 국내 음원 차트 역시 'SWIM'과 수록곡 'Body to Body'(보디 투 보디)가 1, 2위를 다투고 있다. 3년 9개월이라는 공백을 고려할 때 이들이 일군 성적표는 눈부시다 못해 경이롭다.
그렇다면 이토록 폭발적인 방탄소년단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진짜 주인공은 이들이 뚝심 있게 밀어붙인 '음악적 정체성'이다.
이번 앨범의 이름은 'ARIRANG'이다. 1번 트랙 'Body to Body'에는 한국 민요의 선율이, 6번 트랙 'No. 29'에는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가 담겼다. 자신들의 태생적 뿌리가 한국임을 드러낸 요소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단순히 '한국적인 것'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진짜 힘은 그 역설에서 나온다. 타이틀곡 'SWIM'은 가사 전체가 영어로 쓰인 얼터너티브 팝 장르다. 가장 한국적인 앨범명 아래 세계의 언어로 삶의 묵직한 위로를 던진다.
고정적인 '한국성'에 갇히는 대신 글로벌 팝 시장 최정점에 선 자신들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증명했다. 억지스러운 치장보다 곱씹을수록 맛이 나는,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시한 것이다.
이들의 컴백은 단순히 가요계의 경사로 끝나지 않는다. 국가 경제를 춤추게 하는 거대한 산업적 동력, 즉 'BTS노믹스'의 귀환이다.
지난 21일 광화문 컴백 쇼 일대에는 약 4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법무부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18일까지 방탄소년단의 컴백을 앞두고 입국한 외국인은 109만 9700명으로 전년 대비 32% 폭증했다. 이 중 주력 팬층인 1020 세대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광화문 컴백 공연 단 하루가 창출한 소비 효과를 1억 7700만 달러(약 2660억 원)로 추산했다.
물론 방탄소년단의 파급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예고한 4월 월드투어의 규모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34개 도시, 79회 공연. 예상 모객 수만 약 500만 명이다. 이는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든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Eras Tour) 모객 수(460만 명)를 상회하는 수치다. 결코 폄훼될 수 없는 규모다.
지난 3년 9개월의 방탄소년단 공백기 동안 가요계에선 '포스트 BTS'를 찾아 헤맸다. 잘 기획된 K팝 시스템이 또 다른 누군가를 빚어내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였다. 하지만 단 하루 만에 전 세계 차트를 집어삼키고 도심 경제를 쥐고 흔든 방탄소년단의 컴백은 '포스트 BTS'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임을 보여줬다. 이들이 10여 년간 쌓아 올린 파급력을 대신할 수 있는 그룹은 현재로썬 없고 앞으로도 희박하다.
답은 나왔다. 오랜 침묵을 깬 방탄소년단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 이들은 본연의 내밀한 정서로 전 세계인에게 묵직한 위로를 던질 줄 안다. 넷플릭스를 통해 광화문을 190개국과 실시간으로 동기화하는 기획력도 갖췄다. 누구도 가볍게 볼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뜻이다. 방탄소년단이 이끄는 '코리아 인베이전'의 거대한 파도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