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 ADR(주식예탁증서) 공모를 통해 모집한 43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국내로 들여올 예정인 가운데 자금운용방식에 관심이 쏠린다. 금리형 상품이 유력한 가운데 최근 대출 규제를 받고 있는 은행권에선 예금 예치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ADR 상장을 통해 조달하는 자금은 43조1407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최종 발행액 규모는 수요예측을 거쳐 확정된다.
SK하이닉스는 조달 자금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총 투자규모 31조원) 청주 P&T7 어드밴스드 패키징 팹(총 19조원), EUV 스캐너 등 기계 구입(총 11조9000억원)에 투입한다. 이중 용인과 청주 팹 시설 투자는 국내 투자비용으로 올해부터 2030년 12월까지 여러차례에 나눠 집행될 예정이다.
아직까지 SK하이닉스의 자금운용 방식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예정된 일정에 맞춰 투자에 쓸 돈이기에 예·적금, 채권, 저축성 보험과 같이 정해진 일자에 확정된 이자를 지급하는 금리형상품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올해 들어 SK하이닉스는 은행채를 비롯해, 증권채, 여신채 등 금융채와 공사채 등 높은 신용등급의 채권을 사들이며 채권시장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채권 매입만으로 43조원 전액을 소화하긴 어려운 만큼 일부는 은행 예금으로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은행에서는 SK하이닉스 공모자금 예치를 다소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은행권에는 이미 예금 누적이 상당하다. 5대 은행의 1분기 말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중)은 평균 95.9%로 12월 말 대비 0.33%P(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2024년 1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2분기에도 예대율은 해당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식시장 활황에 따른 머니무브로 은행권 수신고가 대폭 줄었을 것이란 예상도 나왔지만 오히려 차익실현 수익금을 은행의 파킹통장이나 정기예금에 넣어두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수신액이 우상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5대은행의 총수신규모는 6월말 기준 1730조2877억원으로 3월 말 대비 21조1805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강화로 대출 집행에 한계가 생기면서 예금 예치 수요도 상대적으로 떨어진 상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자금을 받으면 대출이나 투자로 운용을 해야하는데 가계대출 규제를 받고 있고, 기업대출은 대기업 빼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상 대출도 크게 성장할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이 거액의 예금을 받는다면 이자 비용만 늘어나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큰 규모의 자금이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수시입출금 형태로 들어올 경우 즉각 현금화가 가능한 고유동성 자산을 마련해둬야 한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기예금으로 들어온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요구불예금 형태로 들어올 경우 부담이 있다"며 "장기적인 자금수지를 고려할 때 평잔 변동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주거래 은행 등 일부 은행에 예금을 집중해서 예치한다면 어려울 수 있다"며 "최근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시중에 나온 단기채, 기업어음(CP), 여전채를 많이 사서 굴리고 있어 선택할 수 있는 툴은 많아 기업의 자금운용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