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NH금융PLUS파크원센터 영업점. 기업여신 담당 직원이 컴퓨터 화면에 띄운 통합업무시스템에서 '작성' 버튼을 클릭하자 약 10초 만에 기업 심사보고서 초안이 생성됐다. 기업의 재무제표와 신용정보, 거래현황 등을 분석한 내용이 표와 문장으로 채워졌다. 과거 은행원들이 관련 자료를 흩어진 소스들에서 일일이 찾아 입력하고 분석 의견을 작성하는 데 3일 이상 걸렸던 작업이다.
NH농협은행이 AI를 활용해 기업여신 심사체계를 혁신하고 있다. 보고서 작성뿐 아니라 대출 승인 가능성을 판정하고 신규 기업고객 발굴까지 지원한다. 기업금융 전문인력이 갈수록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직원별 심사 역량 차이를 줄이고 기업 현장과 고객 분석에 집중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지난 7월 말부터 기업여신 심사에 AI를 활용하는 'PASS 심사시스템'을 도입해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기존 3~5일 소요되던 여신심사 부의안 초안 작성 시간이 1분 이내로 단축됐다. 보고서는 최대 A4 용지 20여장 분량에 달한다.
김성훈 농협은행 여신심사부문 부행장은 "이 심사보고서를 쓰는 데 원래는 3~4일 걸린다"며 "옛날에는 표를 직접 다 그렸는데 지금은 20페이지짜리가 10초 만에 나온다"고 했다. 타행과 비교해 매우 상세하고 방대한 분량의 기업심사 보고서가 도출된다는 설명이다.
기업여신 담당 직원은 "기존엔 보고서 양식에 수치를 입력하는 것 자체가 거의 반나절 걸리는 일이었다"며 "이제 일주일에 3~4개 검토할 것을 4~7개까지 검토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AI 마케팅보고서는 사전심사 개념으로, 사업자등록번호를 입력하면 기업의 신용정보와 재무정보, 현금흐름 등을 분석해 운전자금과 시설자금 중 적합한 대출을 제안한다. 기존 거래기업뿐 아니라 외부 신용정보를 활용해 신규 기업고객 발굴도 지원한다.
김 부행장은 "PASS 마케팅 보고서에 사업자번호를 넣으면 이 업체의 신용등급과 우리한테 여신이 있는지 등이 나온다. 이 기업체가 운전자금이 필요한지 시설자금이 필요한지, 현금흐름을 AI가 분석해서 마케팅 포인트를 얘기해 주는 것"이라며 "기업금융을 잘 해보지 않았어도 이런 보고서를 보고 일단 마케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AI 심사보고서는 실제 여신 심사에 활용하는 것으로, 기업의 재무·경영정보 등을 종합 분석해 심사 부의안 초안을 작성한다. 다만 최종 검증은 심사역의 몫이다. 현장 직원은 "작년 12월까지 좋았다가 올해 상반기에 안 좋아져 망하기 직전인 업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장을 방문하거나 최근 매출 자료를 추가적으로 검토한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의 'PASS 심사 시스템'은 실제 판정 기능도 포함한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담보여신은 본점에서 기업 신용평가를 마친 뒤 시스템에서 승인 판정이 나오면 영업점에서 대출을 취급할 수 있다. 종전에는 본부의 별도 승인 절차를 거쳐야 했던 일부 여신을 영업점에서 보다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현장에서 확인한 시스템은 여신을 '시스템 승인', '인적 심사', '시스템 거절'로 구분했다. 추가 심사가 필요한 여신은 사람이 검토하는 구조다.
농협은행이 업무 효율성 못지않게 강조하는 것은 심사 품질의 표준화다. 같은 기업이라도 담당 심사역의 경력과 경험에 따라 위험요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데, AI가 공통된 기초자료와 분석 의견을 제시하면 이러한 편차를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 부행장은 "어느 지점에서 승인을 올리든 어느 심사위원이 심사를 하든 심사의 결과가 예측 가능하고 균질하게 된다"며 "기업여신 경험이 부족한 직원에게 기초 분석자료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스템에는 LG CNS가 구축한 AI 플랫폼과 거대언어모델(LLM)이 활용됐다. 개발 과정에는 기업여신 심사역들이 6개월 이상 직접 참여해 내부 규정과 심사 실무를 반영했다. 농협은행은 이를 통해 단순 서류 작성에 쓰던 시간을 줄이고 기업 현장 방문과 정밀한 위험 분석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