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반값인데도 안 갈아타"…가입자도 외면하는 5세대 실손
"실손 보장이 갈수록 줄고 있는데, 보험료 아낀다고 5세대로 갈아타면 나중에 크게 후회를 할 것 같다".(옛 실손보험 가입자)
5세대 실손 전환과 관련한 보험계약자들의 반응이다. 기존 1·2세대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5세대 실손보험으로 갈아타면 3년간 보험료를 절반만 내는 계약전환 할인제도가 다음달부터 시행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크게 매력을 못 느낀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7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5월 5세대 실손보험 출시 이후 지난달까지 기존 1·2세대 가입자의 전환 규모는 전체 가입자의 0.2% 수준에 그쳤다. 보험료 부담이 큰 초기 실손 가입자를 중심으로 전환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이동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새 상품으로 갈아타면 보험료를 크게 아낄 수 있지만 정작 병원에 갈 일이 생겼을 때 보장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는게 보험업계 현장의 반응이다. 과거 3·4세대 실손보험이 출시됐을 때도 보장 범위 축소와 보험료 절감 효과를 비교해 상당수 가입자가 신상품으로 이동했지만 이러한 경험이 오히려 가입자들에게 새로운 실손보험은 보험료가 저렴한 대신 보장이 줄어든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보험료를 아끼기보다 향후 의료비 부담에 대비해 기존 보장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더 크다는 얘기다. 실제로 5세대 실손은 비중증 비급여 의료 이용에 대한 보장을 대폭 축소했다. 비중증 비급여의 자기부담률은 기존 세대보다 높아지고 보장 한도도 줄어든다. 도수치료 등 일부 비급여 항목은 보장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보장 요건이 강화된다. 반면 중증 질환과 관련한 의료비 보장은 유지·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의료 이용이 적은 가입자는 보험료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비급여 치료를 자주 받는 가입자는 전환 후 본인 부담이 커질 수 있다.
1세대 실손 가입자인 30대 남성 A씨는 "현재 월 9만원 정도 보험료를 내고 있는데 계약을 전환할 계획이 없다"며 "1세대 실손으로 회당 10만원에 해당하는 충격파 치료를 비용추가 없이 받을 수 있었고, 암진단비나 화상, 깁스 이런 특약 혜택까지 갖춰져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보험사도 우려하는 대목이다. 정책적으로는 구세대 실손의 손해율을 낮추고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덜기 위해 전환을 확대해야 하지만 가입자에게 전환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기에는 부담이 따른다. 보장 축소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환을 유도했다가 향후 보험금 지급 거절이나 보장 범위를 둘러싼 민원이 급증할 수 있어서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보험료를 아낄 수 있다는 점만 강조해 전환을 권유했다가 나중에 필요한 보장을 받지 못하면 가입자 불만이 커질 수 있다"며 "가입자들에게 세대이동에 대한 학습효과가 생겼을 뿐 아니라 가입자마다 필요한 보장이 다른 만큼 일률적으로 전환을 유도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땜질식 실손 처방' 언제까지?.."병원 자주가는 10%에 보험료 인상, 정부 결단이 근본대책"
비필수적인 의료의 과다 이용을 막기 위해 5세대 실손의료보험이 지난 5월에 출시되고 다음달에는 5세대 실손 전환시 인센티브 제도(계약전환 할인)가 첫 시행될 예정이지만, 이는 실손보험 구조개혁의 근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약관변경이 불가능한 옛 실손(1·2세대) 계약 가운데 비필수 의료 이용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일부 계약자만이라도 의료 이용량에 맞게 갱신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5세대로 강제 전환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구조개혁을 위해선, '5세대 갈아타기'가 이닌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7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17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약 80%는 전체 보험계약자의 9%에게 지급됐다. 계약자의 65%는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보험금은 받지 않았다. '아픈' 소수의 사람들이 병의원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점에서 상위 9%의 80% 보험금 수령 자체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지급보험금의 대부분은 암·뇌심혈관 등 중증질환(2조6000억원) 보다는 도수치료 등 근골격계 질환(2조7000억원)으로 새고 있다. 과잉 사용 우려가 있는 영양제 등 비급여주사제 보험금도 1조원을 넘었다. 비필수 치료를 위해 지급된 보험금이 비급여 기준으로 50% 가량을 점유해 실손보험 본래 취지와는 동떨어져 있다.
약관변경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1·2세대의 경우 자기 부담금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비급여 과잉진료의 '주범'으로 꼽힌다. 정부가 자기 부담금을 50% 높이고, 도수치료 등 비필수 의료를 보장하지 않는 5세대 실손을 내놓은 이유다.
다만 1·2세대 실손 문제 해결을 위해선 한시적인 갈아타기 '인센티브'가 아니라 위험률에 맞게 보험료를 적정하게 올리도록 가격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 감독규정에는 실손 보험료를 직전의 25% 이내에서만 내리거나 올릴 수 있도록(한도타절) 했다. 보험업계에선 비필수 의료이용량이 많은 상위 5~10%의 일부 계약자만이라도 위험률에 상승해 25% 이상 보험료를 올리고 대신 나머지 90~95% 계약자의 보험료는 낮추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 금융당국은 지난 2016년 실손보험 한도타절 규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까지 발표한 적이 있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가 갖고 있는 법적 권한에 따라 비필수 의료이용량이 많은 계약자를 5세대로 강제 계약전환하는 방안도 남아 있는 카드"라며 "결국 정부의 결단이 있어야 헛바퀴 돌고 있는 실손보험의 개혁이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