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반도체 제왕' 엔비디아가 리벨리온을 만난 이유[비하인드 칩스]

고석용 기자
2026.09.25 09:00

[고석용의 비하인드 칩스]

[편집자주] 글로벌 공룡 기업들이 즐비한 반도체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스타트업들이 있습니다. 아직 작은 기업들이지만, 차별화된 기술력과 전략으로 치열하게 시장을 두들기고 있습니다. 반도체 스타트업들의 흥망성쇠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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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6월 경기 성남 네이버1784 사옥을 방문해 손인사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가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를 만났다. 기술 협력부터 투자, 인수까지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논의 내용은 아직 모두 비공개 상태다. 국내의 관심은 이번 만남이 리벨리온에 가져올 영향에 쏠려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리벨리온이 엔비디아에 인수되는 게 적합하냐는 다소 이른 논쟁까지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선 인수·투자보다는 기술 협력 정도가 진행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대부분이다. 기술 협력은 인수·투자에 비해선 파장이 작지만, 작은 이벤트는 아니다. 기술 협력의 정도에 따라 리벨리온의 성장 궤도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CUDA 이어 또다른 해자 쌓는 엔비디아

반도체 업계 일각에선 엔비디아가 지난해 5월 공개한 서버 내부 반도체 간 통신기술(스케일업 인터커넥트) 규약인 'NVLink 퓨전'과 관련된 게 아니냐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한 데이터센터에 여러 종류의 반도체를 섞어 쓰는 '이기종(Heterogeneous)'이 대세가 되면서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끼리만 써오던 연결규약인 'NVLink'를 외부에도 개방한 플랫폼이다.

엔비디아는 최근 다른 반도체 기업들과 NVLink 퓨전 관련 협력을 꾸준히 늘려오고 있다. 퀄컴, 후지쯔 등 CPU(중앙처리장치) 제조사를 파트너로 끌어들였고, 미디어텍, 마벨 등 외부 반도체를 설계해주는 ASIC(주문형반도체) 팹리스도 파트너로 포함시켰다. 미디어텍에 이달 초 35억달러(4조8000억원)를 투자한 것도 이들이 반도체를 설계하면서 NVLink 퓨전을 쓰도록 하기 위해서란 해석이 나온다.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해 5월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에서 'NVLink 퓨전'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엔비디아

업계는 엔비디아가 이기종 트렌드를 주도해 또하나의 해자를 쌓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인터커넥트 표준인 PCIe나 AMD·인텔이 주도하는 UALink 대신 NVLink 퓨전이 표준규약이 된다면, 이기종 서버에도 반드시 엔비디아 반도체가 꽂히게 돼서다. 아무리 엔비디아의 대항마 반도체가 나와도 생태계를 주도권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컴퓨팅 프로그래밍 모델 CUDA로 업계 해자를 쌓았던 엔비디아가 이번엔 데이터센터 이기종 기술에서 해자를 쌓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도 "NVLink 퓨전은 특히 AMD·인텔이 주도하는 UALink의 부상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CEO와 박 대표의 만남과 논의가 실제로 NVLink 퓨전 관련인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업계는 리벨리온을 NVLink퓨전 진영에 끌어오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는다. 리벨리온은 연결 기술로 범용규약인 PCIe 기반을 활용한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NVLink 해자를 쌓는다는 측면에서 스타트업들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독립과 편입 사이…고민할 수밖에 없는 리벨리온
리벨리온의 서버랙 '리벨랙'. 리벨리온은 인터커넥트(스케일업) 기술로 PCIe 기술규약을 활용하고 있다./사진=리벨리온

리벨리온 입장에선 실제 엔비디아로부터 이같은 기술협력 제안을 받았다면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선택에 따라서 회사의 성장 경로를 바꿀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엔비디아 생태계에 들어가는 것 자체로도 성과일 수 있지만, 이 경우 기술적 독립성을 잃거나 비용적 제약이 생기는 등 성장에 한계가 생길 수 있다"며 "반면 '엔비디아를 대체하겠다'는 기조로 독자 노선을 택할 경우 글로벌 소버린AI 인프라들의 탈 엔비디아 움직임에서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이 길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리벨리온이 탈 엔비디아를 내건 소버린AI 인프라 시장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한 시점이라 고민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리벨리온은 최근 영국과 일본에 서버랙 총 200대 이상 수출하는 계약을 따내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업계에선 지난해 퓨리오사AI가 메타의 인수 제안을 받았다가 거절하고 독자 노선을 택한 사례를 떠올리기도 한다. 당시 퓨리오사AI도 '독립'과 '편입' 사이 어디에 설 것인가라는 고민에 빠졌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는 아직까지 퓨리오사AI의 선택이 옳았냐 말았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리벨리온의 선택은 K-NPU 진영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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