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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조6000억원 이상을 투입한 AI(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사업이 중복 구축과 품질관리 부실로 감사원 지적을 받은 가운데, 실제 현장에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의 검증된 데이터가 이 사업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감사원이 지난 8월 공개한 'AI 산업 육성 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7년부터 2024년까지 1조6328억원 예산을 들여 908종의 AI 학습용 데이터를 구축했다.
하지만 이미 구축된 데이터를 확인하지 않은 채 공공기관별로 개별 사업을 추진하면서 비슷한 데이터를 중복 구축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공공기관이 구축·공개한 AI 학습용 데이터의 품질도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벤처·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감사원이 중복 구축 사례로 제시한 △생활폐기물 △콘크리트 균열 △계란 △야생동물 분야에서는 이미 AI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운영하며 검증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존재했다.
폐기물 데이터 600만건 쌓은 '빼기'
생활폐기물 분야의 대표적인 사례는 환경자원 데이터 플랫폼 '빼기'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같다'다. 빼기는 시민이 소파나 냉장고 같은 대형폐기물을 버릴 때 사진을 찍어 신청하면 품목 확인과 수수료 결제, 수거까지 앱 하나로 처리해 주는 서비스다.
빼기의 누적 회원은 약 250만명, 협약 지방자치단체는 전국 90여곳이다. 매달 약 30만건의 배출 신청이 들어온다. 특히 빼기가 쌓는 데이터의 강점은 '실제 거래'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이용자가 폐기물 사진을 올리고 품목을 고르면 그 사진에는 지자체가 정한 수수료, 실제로 결제된 금액, 수거가 끝났는지 여부까지 함께 기록된다. 사진 한 장이 하나의 완결된 처리 기록이 되는 셈이다. 이 구조 덕분에 잘못된 데이터는 남아 있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소파 사진을 '침대'로 잘못 신청하면 수수료가 맞지 않고, 수거 현장에서도 문제가 바로 드러난다. 오류가 생기면 그때그때 바로잡히게 된다. 감사원이 지적한 '제3자 품질검증 부재' 문제를 매달 수십만건의 실제 결제와 수거로 검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확보한 폐기물 데이터는 600만건이 넘고, 품목 데이터베이스는 약 3500종에 이른다. 폐기물 배출 신청의 약 12%는 중고거래로 이어져 누적 기준 이산화탄소 1만7000톤, 폐기물 소각 4500톤을 줄이는 효과도 냈다.
0.1㎜ 균열까지 잡는다…드론·로봇으로 쌓는 인프라 데이터
콘크리트 균열 분야에서는 시설물 안전진단 스타트업들이 검증된 데이터를 쌓고 있다. AI 드론 기반 안전진단 플랫폼 '시리우스(SIRIUS)'를 운영하는 시에라베이스가 대표적이다.
포스텍 출신 엔지니어들이 2019년 창업한 시에라베이스는 회전형 라이다(LiDAR)와 AI 균열 분석 기술을 결합해 0.1㎜ 수준의 미세 균열까지 찾아낸다. 현재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수자원공사 등 주요 공공기관이 시리우스를 도입해 쓰고 있다.
디지털 안전진단 솔루션 기업 코매퍼는 시설물 외관 이미지를 AI로 분석해 균열, 백태, 박리·박락, 철근 노출, 부식 등의 주요 손상을 자동으로 탐지하고 정량하는 AI 기반 시설물 안전진단 플랫폼 '코디텍트(KO-Detect)'를 상용화했다.
코디텍트는 AI를 통해 0.1㎜ 정밀도와 90% 이상의 정확도로 구조 결함을 탐지한다. 기존 방식보다 비용은 72% 이상, 시간은 63%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과거와 현재의 손상 추이를 시계열로 분석해 보고서까지 만들어 준다.
계란 분야에서는 한밭아이오티가 대표적인 AI 데이터 기업으로 꼽힌다. 한밭아이오티는 AI 기반 계란 품질검사 장비 '에그스캔'을 축산물품질평가원과 함께 개발했다. 이 장비는 고해상도 카메라와 AI 분석으로 균열·이물·변색 등 38종의 품질 항목을 계란을 깨지 않고 판정한다.
계란 가공식품 제조기업 와이제이푸드에 기술을 적용한 사례에 따르면 계란 300개를 검사하는 시간이 30분에서 14분으로 줄었다. 한밭아이오티가 그동안 축적한 계란 관련 데이터는 지난해 말 기준 5000만건 이상에 달한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호에도 AI 적용
야생동물 분야에서는 비전AI 기업 스피어AX가 눈에 띈다. 스피어AX는 국립생태원, KAIST(한국과학기술원) 연구팀과 함께 야생동물 자동 종 판별 시스템 '에코에이아이(Eco.AI)'를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무인 센서 카메라로 찍은 대량의 사진을 AI가 자동으로 분석해 산양·멧돼지·사슴류 등 7개 범주를 자동 분류한다. 이렇게 정리한 데이터를 연구자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멸종위기 1급인 산양 연구에 가장 먼저 활용되고 있다.
에코에이아이 개발에 참여한 김창익 KAIST 인류세(人類世, 인간 활동에 의해 지구의 자연 환경에 유의미한 변화가 초래된 시기) 연구센터 교수는 "인류세 연구의 관점에서 AI 기술이 멸종위기종 보호에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스타트업 업계는 정부가 추진 중인 'AI 학습용 데이터 통합제공시스템' 구축이 민간 현장 데이터를 공공에서 쓰는 제도적 통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스템은 정부가 구축한 AI 학습용 데이터와 민간·대학의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검색·조회·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시스템이 구축되면 별도 예산을 들여 데이터를 새로 구축하는 대신, 현장에서 검증된 민간 데이터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앞서 감사원이 지적한 중복 투자와 품질관리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같다의 경우 여기서 더 나아가 그동안 축적한 폐기물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부·지자체와 데이터 협력 사업을 추진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고재성 같다 대표는 "현장에서 쌓은 데이터를 공공이 활용할 수 있도록 품질을 검증하고 특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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