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오전 그랩 본사가 위치한 싱가포르. 회사 소속 운전사들이 일과 시작을 위해 드라이버 센터로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운전사들이 서비스 지역을 할당받고 업무 교육을 받는 드라이버센터는 세계 최대 차량공유서비스 업체 우버의 동남아시아 사업부를 인수하며 지역 1위 업체로 도약한 그랩의 심장부다.
이곳에서 만난 루앙 치경(63·남)씨는 "10살에 관뒀던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위해 야마하 피아노를 구입했다"며 "아직 굳은 손가락이 풀리지 않았지만, 잊었던 기억을 되돌려준 그랩에 고맙다"고 말했다.
루앙 씨가 잃었던 기억을 되찾은 까닭은 그가 싱가포르 최대 택시회사에서 일하던 6년 전과 비교할 때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서다. 그는 "그랩에서 10시간 일하고 이전에 14시간 리무진 택시를 몰 때와 비슷한 소득을 가져간다"고 말했다.
비결은 그랩의 운전자 우대 정책. 그랩도 우버와 마찬가지로 운전자 수입 중 약 15~20%를 수수료로 받는다. 하지만 해당 수수료 중 일부를 운전자에게 보조금으로 돌려준다. 우버가 운전자에게 보조금으로 돌아갈 부분을 고객들에게 바우처 형태로 지급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동남아 지역에는 생소했던 GPS 기반 콜 시스템은 효율성을 높였다. 루앙씨는 "리처드를 원하는 장소에 내려주면 대니얼이 기다리고 있었다"며 "이전에는 새 승객을 찾아 헤매야 했는데, 돈이 쉬지 않고 들어오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루앙씨와 대화를 나눈 드라이버센터는 일반 택시업체 기사 대기실과 달리 카페를 연상케 하는 쾌적한 환경이었다. 운전사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수익모델은 물론 보험과 대출 상담까지 받을 수 있다.
우버에 비해 '고용'쪽으로 한 클릭 이동한 정책을 타고 그랩 소속 개인사업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14년 2만5000명이던 운전사는 2016년 20만 명에 육박했고 지금은 200만명을 넘어섰다. 그랩이 동남아에서 우버를 넘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업의 '혈맥'인 운전사 확보였던 셈이다.
운전사와 승객 모두에 '윈윈'을 노린 전략은 기업 성장으로 반영됐다. 매달 35% 이상 성장가도를 달린 그랩은 현재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8개국에서 연간 10억달러(약 1조원)의 매출을 낸다. 하루 평균 600만번 이상 운행실적을 내는 이 회사의 가치는 60억달러(약 6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2년 회사 출범 당시 '그랩 택시'(택시 호출)로 시작한 스마트폰 앱 서비스는 그랩 카(개인 차량 공유)와 그랩 히치(카풀), 그랩 바이크(오토바이 공유), 그랩 셔틀(셔틀버스 공유)을 거쳐 식사 배달을 대행하는 그랩 푸드까지 뻗는다. 공과금 납부와 모바일 전자지갑을 통한 송금 등 금융 서비스도 제공한다. 동남아 지역 취약 업종인 '운송'을 플랫폼으로 실현 가능한 모든 서비스를 향해 나아가는 셈이다.
SK가 최근 그랩에 지분 투자를 결정한 것도 그랩이 이처럼 사회적 가치(고용과 복지)와 경제적 가치(기업의 성장) 양립을 통해 '지속가능한 모빌리티'를 추구하는 사업 모델을 갖추고 있어서였다.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려면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내세운 '뉴 SK' 경영철학이다.
그룹 지주사 SK㈜는 그랩과의 협업을 통해 미래 먹거리인 모빌리티 사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SK㈜는 차량공유서비스의 격전지 말레이시아 지역에서 카셰어링업체 쏘카와 합작법인을 냈고, 미국 P2P 카셰어링 1위 업체인 투로(TURO)에도 투자한 상태다.
SK㈜ 관계자는 "그랩 이사회에 SK㈜ 임원이 옵저버 자격으로 참석해 경영 전략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며 "글로벌기업들의 독점화가 가속화되는 공유경제 영역에서 그랩 투자는 국내 산업의 신성장동력 육성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