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의 오래된 찻집 앞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선다. 관광객들은 작은 말차 상자 하나를 사기 위해 한참을 기다린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단순한 말차 제품이 아니다. 교토 남부의 작은 도시 '우지'(Uji)가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와 명성이다.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지역의 이름은 더 이상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고베 비프', '고르곤졸라 치즈'처럼 지역의 역사와 생산 방식, 생산자의 노력, 소비자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브랜드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보성녹차', '광양불고기', '임실치즈' 등은 오랜 기간 소비자의 신뢰를 쌓은 지역 브랜드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방 도시를 찾아 지역 음식과 특산물을 경험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지역의 명성이 관광과 소비를 이끌고 다시 지역경제의 활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지역 브랜드의 가치는 결국 소비자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신뢰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하나의 지역 이름이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신뢰가 흔들리는 데는 순식간이다.
논어 안연편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믿음과 신뢰가 없다면 어떤 것도 설 수 없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지역 유명브랜드라도 믿음과 신뢰를 잃어버리면 그 명성과 위상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온라인 거래와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소비자는 상품의 출처와 진위를 직접 확인하기 어려워졌고, 지역의 명성에 편승하려는 유사 표시 사례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지역 브랜드의 '무신불립'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지식재산처가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등록표지'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다.
소비자가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상품 여부를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지역 브랜드가 오랜 시간 쌓은 신뢰를 더욱 두텁게 만들기 위함이다.
지역의 이름은 오랜 시간 축적된 신뢰의 이름이다. 신뢰를 지키는 일은 단순히 특정 품목을 보호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생산을 넘어 가공·관광·서비스 등 연관 산업으로 가치가 확산할 수 있다.
지역의 고유한 스토리와 정체성을 담은 특산품과 향토자산을 새로운 상품과 콘텐츠로 발전시킨다면 다양한 산업과 서비스로 확장될 수 있다. 이는 청년 창업과 지역 혁신으로 이어지고 세계 시장을 향한 더 큰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균형발전 전략도 결국 지역의 고유한 자산과 강점을 성장 동력으로 키우는 데 의미가 있다. 이제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등록표지'로 지역 향토자산의 믿음과 신뢰를 더욱 높이려고 한다. 무신불립이 아닌 '신뢰가 있을 때 지역 브랜드도 설 수 있다'는 '유신가립'(有信可立)의 정신이 지역의 밝은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