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활기 되찾은 구례 5일장…상인들 "가슴 한편엔 무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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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9 06:34

"집도 없이 추석 명절 보낼 이웃 안타까워"

(구례=뉴스1) 지정운 기자

전남 구례 전통시장인 5일시장 풍경./뉴스1 © News1 지정운 기자

(구례=뉴스1) 지정운 기자 = "추석을 앞두고 장이 열리고 사람도 많이 와서 좋긴 한데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요."

28일 오후 전남 구례군 구례읍 5일시장 입구에서 만난 송순례 할머니(76)의 이야기다.

수십년 뻥튀기 기계로 손님을 맞는 그는 이날도 예전처럼 바쁜 모습이다.

뻥튀기 기계에 옥수수와 보리를 넣어 적당히 볶아 꺼내 식히고, 까만 봉지에 담은 후 기다리던 나이 지긋한 어머니들에게 주섬주섬 챙겨주면서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잠시 허리를 편 송 할머니는 지난 8월8일 아침 아득하고 무서웠던 악몽으로 기억했다.

물이 들어찬 가게에 놓여있던 뻥튀기 기계는 모두 고철로 넘겨야 했고, 각종 부속 기계들도 못쓰게 됐다.

두대의 뻥튀기 기계를 새로 들이고 가게를 열자 예전의 단골손님들이 속속 찾아오고 있지만 송 할머니의 마음은 즐겁지가 않다.

그는 "뜨겁던 여름이 가고 추석 대목장이 열렸지만 장사도 예전 같지 않고, 가슴속엔 무거운 돌덩이 같은 것이 있다"며 "올해는 수해에 태풍, 코로나19까지 몹쓸 것이 한꺼번에 닥쳐왔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날 구례 5일시장은 추석 대목을 맞아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손님을 부르는 소리, 흥정하는 모습으로 채워졌다.

이곳이 불과 50여일전 누런 황토물에 잠겨 아수라장이 된 것을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거리의 철물점과 그릇가게, 음식점, 옷가게에는 손님의 발길이 이어졌고 갖가지 과일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된 가게에서는 무르익은 가을이 느껴졌다.

시장 중간에서 광주기물을 운영하는 고옥순씨(75·여)는 쪽파를 다듬으며 찾아오는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는 "홍수가 난 후 코로나19까지 발생해 정말 힘들었다"며 "2달이 다 되는 동안 억지로라도 잘먹고 면역력을 높여서 잘버티려고 노력해왔다"고 웃었다.

이번 추석에는 자녀들도 오지 못하게 하고 오롯이 혼자만의 휴식을 갖고 싶어한다. 자녀들이 오면 뭐라도 장만해 먹여야 하는데 올해는 지난 50여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래도 난 다른 시장 상인들에 비하면 처지가 나은 편"이라며 "더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뻥튀기 송순례 할머니와 같은 말을 했다.

추석 대목장을 보러온 주민들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광의면 방광마을에 사는 황희순씨(71·여)는 "열흘전 장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보다는 오늘이 더 장날 분위기가 난다"면서 "추석 명절 준비를 위해 장에 나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피해가 없어 괜찮지만 집이 떠내려가고 소가 죽은 사람들이 추석도 못 쇤다는 말을 듣고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8일 오후 전남 구례5일시장을 찾아 지난달 초 폭우로 인해 침수피해를 입은 상인에게 뻥튀기를 사기위해 돈을 건네고 있다.2020.9.28/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앞서 지난 8월7일과 8일 구례지역은 섬진강 범람과 서시천 제방 붕괴로 주택 711동과 상가 597동이 침수피해를 입었고, 1807억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5일장도 8일 오전 7시40분쯤 침수가 시작돼 이날 오후 2시쯤 최고 수위 2.5m를 기록하며 시장 내 157개 점포가 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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