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김영삼·김대중 세력 8명이 두달만에…

김태은 기자
2015.11.25 06:27

[the300]대통령제 아니면 내각책임제?…"집단지도체제 전환 필요" [the300][미래를 찾는 긴 여정-리버럴리스트의 매니페스토](10)시대 상황과 헌법-배경

1987년 직선제 개헌은 앞서 이뤄진 8차례의 개헌과 달리 국민의 힘으로 쟁취한 성과물이란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직선제 개헌이란 방향 아래 정치세력 간 타협에 의한 졸속 개헌이나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안고 있었단 뼈아픈 지적도 받았다.

당시 6월 민주화항쟁에서 표출된 국민의 요구는 '호헌 철폐, 직선쟁취'였다. 국민들은 직접 자신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인식했고 따라서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형성된 상태였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은 신속하게 헌법개정작업에 돌입했다. 집권세력인 민주정의당의 윤길중, 이한동, 권익현, 최영철과 야당인 민주당에서 김영삼계인 박용만과 김동영, 김대중계를 대표하는 이중재과 이용희 등이 8인정치회담을 구성했다. 즉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세 세력 간의 밀실담합 측면이 있었다.

개헌을 위한 8인의 논의는 1987년 7월 31일부터 9월 16일까지 두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재밌는 것은 현재 '제왕적 대통령'이란 비판이 나오지만 이 당시에는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차원에서 5년 단임임기를 비롯해 대통령의 비상조치권과 국회해산권 폐지는 물론 국회의 국정조사권, 국정감사권 부활 등 국회의 행정부 견제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태우와 김영삼, 김대중 등 당시 유력 대권주자들이 '자신의 집권확률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규칙을 마련하기 위한 이해의 절충'에 따라 대통령의 임기, 단임제 또는 중임제, 부통령제 도입 등이 집중 논의됐다.

당시 대통령 임기에 대해 민정당은 6년 단임을 제시한 반면 민주당은 부통령제와 함께 4년 중임제를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논의 대상에 오르지 않았던 5년 단임제로 결론이 난 것은 헌법개정의 주역인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3자 간 정략적 담합의 산물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자신들 중 다른 누가 집권하더라도 다음 기회는 열어놓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실제 개헌 후 이들은 차례로 대통령에 올라 집권에 성공했다.

단임 대통령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국회의원 임기를 고려하지 않은 5년 임기는 여러 가지 문제를 파생시켰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시기가 일치하지 않아 정치적 안정성이 떨어지고 민주적 책임성 확보도 어려운 상황이 지속됐다. 정치권에선 대통령 임기 역시 4년으로 하고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같은 해에 치르거나 2년 간격으로 치르는 방식으로 정치 주기를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현행 헌법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출발한 불완전한 헌법이기는 하나 개헌을 반대하는 여론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개헌의 주체가 되는 국회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요인이다.

개헌에 대해 강한 소신을 지닌 진영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국회 스스로 강도높은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헌을 위한 첫걸음은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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