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법 개정 복지자치권 강화"vs 與 "선심성 복지 남발 우려"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방아쇠를 당긴 청년활동지원사업법안, 일명 '청년수당'이라는 논란의 총탄은 국회로 날아가 '청년수당 법제화' 논의를 불러오고 있다. 동시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복지정책을 조율하는 법안 개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사회보장기본법으로 튄 불똥…제26조가 타깃=지난 16일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자치단체가 신규 복지사업을 시행할 때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사업 내용을 통보만 하면 되도록 하는 내용의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동민 의원 뿐 만이 아니다. 같은 당 위성곤 의원과 정의당 윤소하 의원도 대동소이한 내용의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지난 2일과 7월18일 각각 발의하고 관련 토론회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등 이슈화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세 법안은 모두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가 타깃이다.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지방자치단체 장이 사회보장제도를 신설 또는 변경하고자 할 때는 기존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전달체계와 재정 등에 미치는 영향 등과 관련해 보건복지부장관과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 내용이다.
해당 법 문항의 '협의'라는 단어가 중앙 정부에 의해 '동의'라고 규정되면서 헌법에 보장된 지방자치의 대원칙이 침해받고 있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20대 국회에서 기동민 의원 등 야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은 문구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할 경우 복지부장관과의 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도록 하는, 제26조를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담고 있다.
◇'청년수당' 넘는 근본 고민…교부세법 시행령 개정도 한 몫= 이 같은 움직임은 비단 '청년수당'과 '박원순 지키기'라는 지엽적 이슈에 국한된 야당의 반발 차원만은 아니다.
경기 성남시의 공공산후조리원, 충남 당진 및 충북 청주·영동이 실시했던 장수수당(효도수당) 등 중앙정부에 의해 불가 혹은 폐지가 결정된 지자체 추진 복지정책 실현에 대한 근본 고민을 재검토 해봐야 한다는 야당의 의지가 담겨있다.
아울러 중앙정부가 올해까지 통폐합하기로 결정한 약 1조원 규모의 지자체 복지사업 1496개의 집행 근거가 현재의 사회보장기본법이라는 점, 그리고 지자체가 자체 복지정책을 시행할 때 중앙정부와 협의·조정을 거치지 않으면(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를 따르지 않으면) 그만큼의 지방교부세를 삭감할 수 있도록 한 지방교부세법 시행령을 올해 초부터 시행한 점 등도 야당의 법 개정 의지에 불을 지폈다.
◇개정 가능성은? 與 부정적 "청년수당 관련이라면…"= 그러나 야당의 이 같은 적극적인 움직임과는 별개로 실제 사회보장법이 개정될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다. 법안 심사의 '카운터파트너'인 여당이 개정 논의의 큰 틀에서 동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법개정 수준을 넘어 정치적 목적이 있는 법 개정은 어렵다는 의견이다.
복지위 새누리당 간사인 김상훈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법안이 발의 되면 심사는 기본적으로 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역할"이라면서도 "그러나 야당에서 추진 중인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이 '청년수당'에 방점이 찍힌 것이라면 개정 필요성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사회보장기본법의 큰 전제는 낭비적인 선심성 복지 정책들의 남발 우려를 없애기 위해 중앙 정부가 컨트롤하려는 취지"라며 "국가 전체로 봤을 때 서울과 성남 등 재정자립도가 뛰어난 지자체들도 큰 기준(중앙 재정)의 범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견에 대해 기동민 의원은 "여당과의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며 "급하지 않게 충분히 토론하고 보완해서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시행 3년여만에 개정 논란 휩싸인 '박근혜 복지법' 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복지전쟁’을 촉발한 사회보장기본법의 전신은 1963년 제정된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이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 만들어진 이 법은 사회복지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32년만인 1995년 폐지되고, 현재의 사회보장기본법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이후 고령화 및 저출산 문제 등 우리나라에 맞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2011년말 전면 개정작업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18대 국회 때 관련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고, 이를 토대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대선공약으로 내걸면서 ‘박근혜 복지법’이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전면 개정 당시부터 지방자치와 지역복지 침해 등 제도의 실효성과 위법성 논란이 적잖았다.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복지전쟁은 이미 전면 개정 당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던 것.
대표적인 게 사회보장제도 신설·변경 사전협의제와 사회보장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논란이다. 사회보장제도 신설·변경 사전협의제는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사회보장제도를 신설 또는 변경하고자 할 때 기존제도와의 관계 및 재정 등에 미치는 영향을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와 서울시의 청년수당 논쟁의 핵심이기도 한 이 조항은 도입 당시부터 지방자치와 지역복지를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실제 제도 시행 이후 정부가 이 조항을 들어 지자체들이 추진하려는 사회복지제도에 잇따라 브레이크를 걸면서 곳곳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정부는 법에 명시된 ‘협의’는 ‘합의’ 내지 ‘동의’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인 반면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는 절차적 의미에 불과하다며 맞서고 있는 것. 법제처가 지난해 9월 ‘협의’는 합의 또는 동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구속력이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지만 논란은 계속됐고, 결국 정부와 지자체간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실례로 서울시는 정부가 청년수당에 대해 직권취소 처분을 내리자 지난 19일 대법원에 직권취소에 대한 취소처분과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성남시도 지난해 말 복지부의 청년배당 불수용 결정과 관련,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정부와 지자체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를 심의·조정하는 사회보장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도 논란거리다. 위원회가 정부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정작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복지제도를 시행해야 할 지자체들은 소외된 탓이다.
현재 30명으로 구성된 사회보장위원회는 위원장인 국무총리를 비롯해 각 부처 장관 등 15명이 정부 당연직 위원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나머지 15명의 민간위원 역시 대부분 전직 고위관료 출신이거나 공공기관장으로 구성돼 있다. 사회보장위원회가 정부 편향적으로 운영되면서 지자체의 자치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는 지난달 국회서 열린 지역복지 수호와 사회보장기본법 개정방안 토론회에서 “생애주기별 맞춤형 사회보장은 시민들의 욕구맞춤형이 돼야 하는데 실제로는 정부의 재정통제에 맞춘 재정맞춤형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방자치에 반하고 지역복지를 침해할 수 있는 사전협의제와 사회보장위원회 등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며 “사전협의제의 ‘협의’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평가와 분석을 통해 지자체의 지역복지발전을 유도하고, 사회보장위원회도 국회에 민간위원 추천권을 부여하는 방안 등을 적극 모색하고 회의록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말 안듣는 지자체엔 여지없는 '시행령' 칼날
지난해 말 개정된 지방교부세법 시행령도 지자체의 복지정책을 압박하고 있다. 시행령은 지자체가 중앙정부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지방교부세를 감액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일부 지자체의 청년 지원대책에 대해 정부가 강한 입김을 발휘할 수 있는 내용이다.
청년활동 지원사업을 발표한 서울시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말 기자회견에서 "교부세를 수단으로 자치권이 보장된 주민복리사업을 중앙정부가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헌법정신 위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시는 권한쟁의심판(국가기관-지자체 간 분쟁 해결제도)을 내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청년복지제도의 원조 격인 성남시는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같은 내용으로 권한쟁의심판도 이미 청구한 상태다. 성남시의 대표 복지대책인 청년배당은 물론 무상교복이나 공공산후조리원 제도에 대해 관련 시행령이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한 법 개정은 현장 여론과 동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열린 저출산고령화 특위 공청회에서 "청년수당 등은 지자체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데 중앙정부만 오면 포퓰리즘이라 공격받는다"며 "예산 여유가 있다면 지자체에서 먼저 시범사업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이번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 사태가 비단 이 법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현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고 있다는 거다. 지방교부세법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 지자체들은 예산이 있어도 복지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누리과정 편성 문제에서도 시행령 만능주의가 엿보인다. 지난해 개정된 지방재정법 시행령은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지출 경비로 지정했다. 중앙정부는 이를 근거로 "시도 교육감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라고 주장한다. 교육감들이 "시행령보다 우선하는 법률에는 그런 근거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는 바로 그 내용이다.
英 중앙집중-獨 지방분권…정답 없지만 대화로 푼다
'복지 자치'의 관건은 결국 예산과 재정권한이다. 현행 사회보장기본법이 지방자치단체의 신규 복지사업을 사전협의토록 한 것도 지방의 방만한 지출이나 단체장의 업적 관리를 위한 ' 정치적 복지'를 막고 재정관리를 철저히 하겠단 취지다.
22일 현재 각종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은 크게 중앙이 지역의 복지수요를 점검, 판단해 재정을 내려보내는 중앙집중형과 지자체가 상당한 자율권을 가진 지방분권형으로 나뉜다. 영국은 중앙집중형, 연방인 미국과 독일은 각각 분권형이다.
영국은 중앙정부가 보조금을 지방에 주고 지방이 이 돈으로 복지를 시행하는 게 골자다. 지방도 자체 세원이 있긴 하지만 국세와 지방세 규모가 95대 5일 정도로 중앙 재정이 크다. 지자체가 마음대로 복지정책을 결정할 수 없는 만큼 지방이 필요한 복지수요를 중앙정부가 최대한 정확히 계산, 교부금을 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중앙-지방정부간 대화가 제도화됐다. 지방정부협의체와 중앙정부의 소관부처가 '지방재정자문위'를 구성해 교부금 규모를 결정한다.
미국과 독일은 연방국가답게 지방정부의 자율성이 비교적 크다. 미국 정부는 연방정부-주정부-지방정부 3단계이다. 주정부 예산 중 연방정부에서 받는 보조금이 연간 35%, 지방정부의 조세수입에서도 연방주정부의 보조금이 약 40%다. 연방보조금은 지방의 자율권을 확보하기 위해 세분화하기보다 포괄보조금 형태를 띤다. 보조금을 주되 어디에 어떻게 나누어 쓸지는 지방정부의 재량에 맡기는 셈이다. 독일은 연방-주정부 사이 수직적 재정조정과 함께 주정부끼리 수평적 재정조정도 중시한다.
중앙집중과 지방분권 중 어느 쪽이 낫다는 정답은 없다. 우리나라에도 이를 두고 해묵은 논쟁이 벌어진다. 중앙정부는 흔히 지자체가 불필요한 곳에 돈을 덜 쓰면 복지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지역에선 지자체의 의무는 커진 반면 이를 수행할 예산과 복지 자치권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시각차를 보인다.
중앙-지방간 사회복지재정 분담제도를 연구한 김재일 단국대 교수는 "영국의 경우 중앙·지방 정부간 대화는 재정지원에 민주성과 신축성을 확보하는 장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복지정책에 중앙과 지방의 영역을 칼로 자르듯 구분하기는 어렵다. 비록 중앙정부의 복지서비스라도 실제 수혜대상과 접촉하는 창구는 지방정부가 맡는 등 사업 성격, 수혜대상 등 중첩되는 사업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중앙-지방간 충분한 소통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연구도 중앙과 지자체의 원활한 정책연계를 강조했다.
정치적 판단에 따른 논쟁을 예방하자면 복지 서비스의 성격에 따른 일관된 기준도 필요하다. '내셔널 미니멈'(national minimum)은 최소한의 국민 생활 수준을 뜻한다. 기초생활보장이나 노인복지, 영유아보육이 해당한다. 이런 복지라면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반대로 지역 특성이 강하게 반영되는 복지라면 지방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식이다.
김재일 교수는 "내셔널 미니멈 성격의 복지사업은 지역별 재정여건에 관계없이 표준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100% 중앙정부 재정부담이 원칙적으로 맞고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현행 기준보조율을 인상하는 것이 차선"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