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역사학자들 "청와대, 교과서로 '갑질'…국편위원장 사퇴하라"

김종훈 기자
2015.10.21 13:53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역사학계 원로 7명 기자회견…"국정화 논쟁은 대한민국 전통을 다루는 문제"

21일 오전 10시30분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한국사학계 원로학자 7명이 서울 종로구 흥사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종훈 기자

역사학계 원로 학자들이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을 규탄하고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한국사학계 원로학자 7명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흥사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인으로서 바른 행동을 보여주고 싶다면 김정배 위원장은 용감하게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이이화 전 서원대 석좌교수는 "김정배 위원장은 역사인으로서 반성해야 한다"며 "청와대를 향해 간언할 용기가 없다면 물러나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날 원로들은 정부와 여당에 대해 △대통령이 나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를 철회할 것 △한국사 연구와 교육을 이념대립의 도구로 악용하지 말 것 △김정배 위원장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거취를 결정할 것 등을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만열 전 위원장은 "여당은 지난 8년 동안 정권 입맛에 맞게 한국사 교육정책을 요리해오지 않았냐"며 "정부와 여당이 검인정제 교과서를 비난하며 국정화를 선전하는 것은 대국민 사기극이나 다름없다"고 질책했다.

이어 "교과서 국정화 논쟁은 '대한민국의 역사 전통을 독립운동과 4·19 혁명에 두느냐 친일과 5·16 신군부 독재세력에 두느냐의 문제"라며 "국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정부와 여당의 잘못된 시각과 정책을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로들은 이날 정부와 여당이 교과서 국정화는 필수라고 주장하며 제시한 근거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검인정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패배주의를 심어준다는 주장에 "독립운동부터 민주화, 경제발전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처럼 자랑스러운 역사가 없다"며 "일부 국정화에 찬조하는 세력이 우리 역사를 패배주의적으로 보고 뭔가를 감추고 싶어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석좌교수는 국정 교과서가 다양한 관점에서 기술될 수 있게 하겠다는 정부 지침과 관련해 "현실성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어떤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틀 안에서 역사를 쓰라고 하는데 다양성이 나올 수 있겠느냐"며 "국정화라는 제도 자체가 다양성과 거리가 멀다"고 꼬집었다.

국정 교과서 편찬에 역사가 아닌 타 분야를 전공한 집필진을 참여시키겠다는 정부 입장에 대해서도 역사학계가 국정화 교과서 집필에 대거 불참을 선언하자 내놓은 궁여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서 명예교수는 "조선 후기를 기술할 때 음악 관련 내용이 5줄 들어간다고 해서 음악 전문가를 불러 쓰게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경제학자, 사회학자, 미술가를 다 참여시켜서 역사 교과를 만들겠다는 것은 넌센스"라고 지적했다.

또 "언론과 국회에서 국정화 교과서를 집필할 방법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자 내놓은 안이 여러 분야 인사를 모아서 책을 쓰겠다는 것"이라며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이 역사교과서 만드는 과정을 아는지 의심스럽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국정화는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갑질'"이라며 "국정화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전 지식인 사회의 반발에 부딪힐 것이고 집권 여당도 분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국정화를 둘러싸고 찬반으로 양립한 후배 역사학자들에게 "국정화 문제는 갈등할 필요없이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학교에서 올바른 것을 배우고 가르친다면 올바른 길을 향해 나아가다 달라"고 당부했다.

오는 30일과 31일 역사학계는 서울대에서 열리는 전국 역사학대회에서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격론을 벌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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