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합병가액 잘못됐다" 결정…향후 파장은

황국상 , 한정수 , 이경은 기자
2016.05.31 17:20

[the L리포트] 서울고법 "삼성물산 기준주가, 합병이벤트에 영향…기준일 바꿔라"

엘리엇 측의 법률대리인인 최영인 변호사가 지난해 7월17일 오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위한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이동훈기자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당시 삼성물산 기준주가가 잘못 산정됐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31일 서울고등법원 민사35부(부장판사 윤종구)는 일성신약과 소액주주 등이 지난해 삼성물산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제기한 가격조정 비송사건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측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렸다.

서울고법은 주식매수청구권의 가격에 대해 삼성 측이 주주들에게 제시한 5만7234원이 아니라 6만6602원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초 삼성 측이 제시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보다 16.4% 가량 높은 수준이다.

이번 결정은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과정에 대한 것이지만 사실상 삼성물산 합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기준가격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과도하게 낮은 주식매수청구가격, 이유는 바로 '기준일'

지난해 합병을 추진하던 당시 삼성 측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을 각각 15만6493원, 5만7234원으로 제시했다. 삼성 측은 해당 가격을 산출할 때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165조의5와 자본시장법 시행령 176조의7 조항을 근거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 조항들은 합병계약 전일을 기준일로 삼고 해당기준일로부터 2개월, 1개월, 1주일간 주가를 산술평균한 가격을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으로 삼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간 합병계약 체결일은 5월26일이었고 기준일은 5월25일이었다. 삼성 측은 5월25일을 기준일로 잡아 자본시장법이 규정한 방법론으로 양사의 기준주가를 산정했다.

문제는 해당시점이 삼성물산 주가가 부진한 흐름을 이어간 시기였다는 점에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4년 12월 마지막 거래일에 6만1500원이었던 옛 삼성물산 주가는 삼성 측이 제시한 기준일(2015년 5월25일) 직전 거래일에는 5만5300원으로 10.1% 하락한 상태였다.

반면 삼성물산의 주력업종인 건설업 주가는 당시 상당수준으로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 건설업지수는 118.66에서 149.06으로 25.6% 올랐다. 삼성물산이 시장지수 대비 35%포인트 이상 부진한 주가흐름을 보였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할 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삼성물산 주가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서울고법은 "삼성물산 주가는 합병에 관한 이사회 결의일 이전부터 이미 합병계획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며 "합병이사회 결의일 전일 무렵의 삼성물산 주가는 삼성물산의 객관적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시점과 가장 가까운 시점으로서 합병계획이 삼성물산 주가에 미친 영향, 합병을 앞두고 삼성물산 주가가 낮게 의도됐을 가능성, 모든 시장 참여자가 아니라 특정주주나 전문가가 악용했을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는 시점은 제일모직 상장 전일인 2014년 12월17일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2014년 12월17일을 기준일로 한 시장주가를 기초로 주식매수 가격을 결정하기로 하되 자본시장법 시행령 조항의 방법론을 유추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결과가 삼성 측이 제시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5만7234원)과 이날 서울고법이 조정한 가격(6만6602원)의 차이로 나왔다.

"기준일이 문제라면, '합병비율'도 문제".. 합병무효소송 영향 불가피

기준가격이 잘못된 기준일로 인해 과도하게 낮게 산정된 만큼 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비율도 문제삼을 수 있다는 얘기와도 같다. 지난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한 가장 주요한 근거도 삼성물산 기준주가가 과도하게 낮게 설정돼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는 점이었다.

지난해 엘리엇이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을 주장하며 제기한 합병주주총회 소집통지·결의 금지 가처분신청은 당시 "자본시장법에 따라 합병가액을 산정하고 그에 따라 합병비율을 정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그 합병비율이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는 서울중앙지법의 판단에 의해 기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서울고법의 결정은 '기준일' 자체가 잘못 선정됐을 경우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5는 합병계약 전일을 기준일로 삼아 1개월, 1주일, 최근일 종가를 산술평균한 후 일정비율의 할인·할증을 거쳐 기준주가를 정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액을 결정할 때 산술평균 기간이 다를 뿐 기준일은 같다.

서울고법이 이날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 산정을 위한 기준일로 삼은 2014년 12월17일을 합병비율 산정을 위한 기준주가 기준일로 삼을 경우 합병비율 산정을 위한 삼성물산 기준주가도 회사 측이 제시한 5만5767원에서 6만4299원으로 15.3% 가량 높아지고 제일모직과의 합병비율(1대 0.35)도 1대 0.404로 올라가게 된다. 옛 삼성물산 주식을 제출하고 새로 받을 수 있는 제일모직 주식의 수도 더 많아진다는 얘기다.

한편 삼성 측이 이번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액 조정에 대한 서울고법의 결정에 불복할 경우 재항고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비송사건의 재항고심은 대법원이 맡게 된다. 만약 대법원도 일성신약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린다면 현재 진행 중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무효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현재 일성신약 등 5인이 제기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무효소송은 1심에서 원고패소 판결이 나온 후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줄곧 이번 합병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엘리엇은 지난 3월 소송을 취하했다.

증권분쟁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이번 서울고법의 결정이 재항고에서까지 인용되고 합병무효소송에서도 당시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합병무효소송에서 원고 측이 승소한다고 해서 이미 합쳐진 회사를 분할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합병과정에서 손해를 주장하는 이들이 당시 합병에 관여한 회사의 이사진을 상대로 민사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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