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과 관련한 사건이라면 전관변호사에게 맡기지 말라고 말하겠습니다. 전관을 고용하더라도 안될 일은 안되는 겁니다. 피의자 주장이 받아들여질 만하다면 전관이 아니더라도 통합니다."
한국의 많은 로펌에서는 '판사님'과 '검사님'이 같은 사무실에서 변호사들과 함께 일한다. 공직에서 은퇴한 후 변호사로 전직한 지 수년에서 십수년이 지나도 이들은 여전히 '부장(판사)님' '검사(장)님' 호칭을 들으며 로펌에서 근무 중이다. 전관 변호사들의 얘기다.
이들 전관 변호사들의 과거 경력은 여전히 특정 부문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관효과'에 대한 환상 때문이다. 의뢰인들은 판사출신 전관변호사를 통해 유리한 판결을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혹은 검사출신 전관변호사를 통해 기소를 면하거나 구형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들을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한다.
최근 '정운호(전 네추럴리퍼블릭 대표) 게이트'를 비롯한 각종 법조브로커 비리에서도 이들도 홍만표 전 검사장이나 최유정 전 판사 등 전관 변호사들이 핵심 연결고리로 활동한다. 법조 브로커의 활동이 곧 전관과 현직 판·검사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머니투데이 더엘(The L)은 전관변호사들과 함께 일했던 소위 '어쏘 변호사'(Associate Attorney, 경력이 짧은 주니어 변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관변호사들의 실제 업무형태에 대해 알아봤다. 이들은 "전관 변호사들이 아니라 같은 사무실의 주니어 변호사들이 서면작성에서 소송관련 업무의 대부분을 수행한다"며 "전관변호사들은 실제로 주요 업무를 대행해 줄 '대필변호사'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럼에도 '전관효과' 대한 환상은 강하다. 법조서비스 시장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법적판단 이외의 요소가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의뢰인, 특히 형사사건을 상담하기 위해 내방하는 이들은 본인이나 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기소여부나 판결여부에 불안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전관변호사들은 이들의 불안한 심리를 적극 활용한다고 한다.
판사출신 전관변호사와 일한 경험이 있는 A변호사는 "전관은 의뢰인이 내방해서 해당사건의 판사 이름을 대면 수첩을 뒤적이며 '걔랑 나랑 며칠 전 같이 술 마셨다' '내가 ○○에서 판사할 때 걔가 ××에서 나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으스대곤 했다"며 "진짜 그런 인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어떤 판사의 이름이 나오더라도 레퍼토리는 비슷했다"고 말했다.
검사출신 전관과 일한 경험이 있는 B변호사는 "의뢰인들과 만나는 전관은 아예 '검사님' '검사장님'으로 불린다"며 "이 때문에 의뢰인들은 '변호사'로 불리는 이들보다 전관에 대해 더 신뢰감을 가지고 대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 전관이 의뢰인들과 만날 때 필수적으로 대동하는 이들이 바로 어쏘변호사들이다. 이들 어쏘변호사들은 의뢰인과 만나는 자리에서 그저 '유능한 후배'이자 '이번 사건에서 나(전관)를 도와줄 동료'라고만 소개되지만 실제 이들이 대부분의 서면을 작성하곤 한다.
B변호사는 "서면작성 도중 내용파악을 위해 의뢰인에게 질문을 해야할 때 내가 직접 전화를 걸면 의뢰인들이 '그분(전관)이 아니라 B변호사님이 쓰시는 거냐'고 물을 때가 있다"며 "이 때는 주위에서 알려준 대로 '전관변호사가 작성을 하시지만 그냥 나(B변호사)는 도와드릴 뿐'이라고 답한다"고 설명했다.
구속된 피의자가 있는 구치소에 전관변호사가 직접 접견을 가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의뢰한 피의자 측에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 재판에 들어갈 때가 돼서야 해당 전관은 수험생이 벼락치기하듯 서면을 훑어보고 들어간다고 한다.
의뢰인들에게 실제 서면을 작성해 법원에 제출한 어쏘변호사들은 단지 잡무를 처리하는 이들일 뿐이다. 역시 검사출신 전관과 일했던 C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후 전관에게 찾아와서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지만 실제 밤을 새서 서면을 작성한 나는 찬밥신세"라고 한탄했다.
전관변호사를 고용한 효과가 실제로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라는 게 이들 어쏘변호사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C변호사는 "의뢰인들이 법을 잘 모르는 데다 법조계 인맥효과의 불투명성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을 이용한 셈"이라며 "전관인 데다 판사·검사와 인맥이 있으면 사건의 결론을 뒤집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믿으며 굽신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또 "전관이라는 이유로 비용도 더 지불했을텐데 1심에 원하는 결론이 안나와서 항소까지 이어가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전관을 고용했더라도 안될 일은 안되는 것이고 피의자 측 주장이 받아들여질 것은 전관이 아니더라도 받아들여졌을 만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B변호사는 "내 가족이 연관된 사건이라면 이 사람(전관)에게 사건을 맡기지 말라고 해야지 싶을 정도로 부정적인 모습이 많다"며 "일반 의뢰인들이 왔을 때 전관들이 전직시절의 권력을 여전히 유지하는 듯한 뉘앙스와 권위적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이 싫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돼 있는 전체 변호사의 수는 2만1000여명으로 이 중 판사·검사 경력을 가진 전관들의 수는 3300여명으로 전체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법조브로커 근절대책의 하나로 전체 변호사의 학력과 주요 수임사건, 징계여부 등의 신상정보를 온라인으로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변호사 측은 "법조브로커 문제의 핵심인 전관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전관문제와 무관한 비(非)전관 변호사들에게까지 책임을 씌우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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