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KAL) 858편 실종. 탑승객 115명 전원사망'
29년 전 오늘(1987년 11월29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보잉707(KE858) 여객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실종됐다. 사라진 항공기는 공중폭파된 것으로 드러났으나 잔해조차 발견되지 않아 조작의혹이 제기됐다.
수차례 진상조사 결과 북한 공작원 김현희(54·당시 25세)와 김승일이 지시를 받고 저지른 테러로 밝혀졌으나 유가족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시신조차 돌려받지 못한 유가족들은 여전히 명백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사고는 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16일)를 보름 앞두고 벌어졌다. 중동아시아(중동) 건설현장에서 '외화벌이'에 땀 흘린 근로자 등 한국인 93명과 외국인 2명, 승무원 20명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고 이후 한동안 원인조차 몰랐다.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난 뒤(12월13일)에야 인근 해상에서 구명보트 등 부유물이 발견돼 '폭발사고'임을 알게 됐다. 사고 직후 한국은 진상조사단을 파견했지만 원인 규명에는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조사단이 잡은 실마리는 경유지(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내린 일본인 남녀 2명이었다. 이들은 사고 이틀 뒤(12월1일) 바레인에서 붙잡혔는데 일본인 이름을 쓴 북한 공작원으로 드러났다. 이에 한국정부는 강력한 북한 규탄 의지를 밝혔다.
김승일(하치야 신이치)은 검거되면서 음독자살했고 김현희(하치야 마유미)는 소량을 조사받게 됐다. 김현희는 대통령선거가 있기 하루 전날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압송됐고 이 모습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북한에 대한 경계가 극대화된 상황에서 개헌(1987년 10월) 직후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이 사고에 대한 잔해나 유해도 없고 원인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한항공 폭파사고는 당시 선거에서 '군사정권 교체'에 대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고,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에 승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사건은 선거 이후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현희는 선거 1개월 뒤인 1988년 1월 자신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신분을 밝히고 기내에 시한폭탄과 술로 위장한 액체폭발물(PLX)을 설치해 테러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그는 "김정일의 사주로 88올림픽 방해와 선거분위기 혼란야기, 남한 내 계급투쟁 촉발 등을 목적으로 비행기를 폭파했다"고 말했다.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테러행위를 규탄하며 비자발급 제한 등의 제재 조치를 가했다.
이렇다 할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김현희의 진술'로 폭파사건이 일단락됐다. 김현희는 1989년 2월 살인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고 1990년 3월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문제는 또 생겼다. 사형수 김현희가 한달 만에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나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1991년 그가 쓴 수기집(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1997년 자신을 경호한 국가정보원(당시 안기부) 직원과 결혼한 그는 이후 언론에 종종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사이 유가족들의 가슴엔 피눈물이 흘렀다. 유가족들은 폭파사고에 대한 한국정부의 조작의혹을 제기하며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김현희가 가짜 공작원일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남북 공동조사를 주장하기도 했다.
유족들의 끈질긴 요구로 2006년과 2007년 재조사가 이뤄지기도 했으나 '조작이 아니다'라고 결론나면서 사실상 사건은 마무리됐다. 2010년 북한 간부가 간접적으로 범행사실을 인정했고 2012년 북한 소행임을 뒷받침하는 미국 기밀문서도 공개됐다. 유가족 등은 매년 사고 당일 추모제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