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방에서 검사 보겠다고 올라왔는데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가는 게 말이 됩니까?"
금요일 오후 4시, 서울고등검찰청에 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사족이 많이 붙어있지만 결국 검사를 만나게 해달라는 얘기다. 벌써 3주째 반복되는 소란에 검찰청 방호원들은 익숙한 듯 "돌아가셔서 연락을 기다리시라"며 겨우 이 여성을 돌려보낸다.
행패라면 행패라 할 수도 있지만 드문 일은 아니다. 검사에게 억울한 사연을 호소한 후 직접 수사 한 번 받고 싶다며 검찰청을 찾아오는 민원인이 적지 않다는 것.
서울고검 방호원은 "검사를 직접 만나겠다며 고성을 지르고 몸싸움하는 악성 민원인들은 수없이 많았다"면서 "10년 전 한 검사가 사무실로 올려보내라고 해서 만난 적을 빼고는 실제 검사를 만난 적은 없다"고 전했다.
사건 당사자들, 특히 본인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고소 혹은 고발을 한 피고소인·피고발인들에게 검찰 수사는 마지막 보루같이 여겨진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사건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았을 경우 검찰이 다시 이를 공정하고 명확하게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에서다. 아예 처음부터 경찰이 아닌 검찰에 고소·고발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평소에는 검찰을 욕하면서도 막상 수사가 필요할 때는 검찰로 달려간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지역에 근무하는 한 고위직 검사는 "경찰 조사가 부족하다고 하거나 검찰에서만 조사를 바라는 민원인들이 종종 있다"며 "그런 경우엔 불러서 조사하기도 하고 만나서 얘기를 들어준다"고 말했다.
막상 검찰 수사 단계에서 사건 당사자들이 담당 검사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물리적으로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사건을 검사가 일일이 살펴보는 것 자체가 쉽지않다고 검사들은 하소연한다. 형사부의 경우 검사 한명이 한달간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100건 이상이다. 사건 처리가 끝날 때까지 검사 얼굴 한번 보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러다보니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해야 제대로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 기대했던 사건 당사자들에겐 검사 한번 만나는 것이 소원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는 검사를 만나는 기회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수사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혁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뜨거운 요즘 검찰의 수사는 '해서는 안될 일'이 되고 있다.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을 원칙으로 하는 현재의 수사권 조정안이 제도적으로 완성되면 검찰에 수사 한번 받고 싶다며 검찰청을 직접 찾는 민원인들의 외침도 '허공 속의 메아리'가 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