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났는데 문 안 열어" 10명 참사…도망갈까 봐 만든 쇠창살, 죽음 불렀다[뉴스속오늘]

윤혜주 기자
2026.02.11 06:00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사건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진=MBC 보도화면 갈무리

2007년 2월 11일 일요일 새벽, 법무부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불이 나 갇혀 있던 외국인 수용자 10명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곳 수용자들은 여수와 순천, 광양 등지에서 불법체류나 밀입국 등의 혐의로 붙잡혀 온 외국인들로 조사를 받은 뒤 본국으로 강제송환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불 났는데 문은 안 열렸다

불은 이날 오전 3시 55분쯤 청사 3층 보호동 304호실에서 시작됐다. 당시 청사 3층 보호동에는 외국인 51명이, 4층 보호동에는 4명이 잠을 자고 있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5명은 각각 감시실(3층)과 상황실(2층)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불이 나자 같은 층에 위치한 감시실에서 근무하던 출입국 관리사무소 직원 3명이 소화기 3대를 사용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외부 잠금장치를 열지 않은 채 문 밖에서 진화작업을 벌인 탓에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304호실 내 TV까지 소화기 분말이 미치지 못했다. 불길은 305호로 번져나갔다.

출입국 관리사무소 측은 자체 진화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119에 신고했다. 당시 119소방본부에 화재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오전 4시 4분.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으로 변한 상태였다.

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취침실과 맞닿아 있는 TV 근처에서 갑자기 불꽃이 발생한 뒤 삽시간에 건물 전체가 연기로 가득찼다"며 "2층 사무실로 내려가 취침실 열쇠를 가져오는 사이 이미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 상태였다"고 전했다.

초기진화에 실패한 상황에서 8분 뒤 소방대원들이 도착했고, 출입국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잠금장치를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케한 연기와 거센 불길 탓에 전체 6개 취침실 가운데 3개만 문을 열었고 나머지는 포기해야만 했다.

불길이 번지면서 유독가스로 인해 3층 보호동에 있던 외국인 51명 중 10명이 숨지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어 병원 치료를 받았다. 사망자는 모두 잠긴 방에서 연기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불은 1시간여만에 진화됐다.

화재 경보기 '먹통'…우레탄 매트리스는 '활활'
사진=MBC 보도화면 갈무리

불이 나면 대형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시설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화재 당시 소방시설은 사실상 먹통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으며 화재 경보기 또한 울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보호실에 깔려있던 우레탄 매트리스는 불에 타면서 유독가스를 마구 내뿜었다.

특히 불길이 번지는 긴박한 상황에서 이중 잠금장치를 푸는 데 시간을 허비하며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대형 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시설 특성상 외국인들이 많음에도 통역 문제가 매끄럽지 않다 보니 화재 직후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허둥지둥대는 모습이 곳곳에서 노출된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경찰은 정확한 화재 원인 등에 대해 관계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최초 발화지점인 304호에 있던 한 중국인 A씨는 "화재 당시 불길을 피해 화장실 바닥에 엎드려 있을 때, 옆에 있던 중국인이 방화 용의자인 김 씨를 향해 '이러지마. 불 내지마'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또 "방화용의자인 김 씨가 불이 잘 붙도록 가연성 바닥재를 들고 있는 것을 봤다"고도 덧붙였다.

여기에 김 씨가 화재 발생 전날인 2월 10일 CCTV 카메라를 물 묻힌 화장지로 가리는 등의 행동을 한 점도 파악되면서 방화에 무게가 실렸다.

화재 현장에 대한 2차 정밀감식에서는 304호 보호실 거실 내 사물함에서 탄 잔류물 속과 화장실 문턱 밑 모포 아래서 일회용 라이터 1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김 씨가 방화 당시 운동복을 겹쳐 입고 있었고 현금을 소지한 점 등을 미뤄 불을 낸 뒤 혼란을 틈타 달아나려 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참사가 발생한 지 23일 만인 2007년 3월 6일 경찰은 보호 중이던 중국인 김 씨의 방화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화재현장에서 발견된 라이터, 보호외국인 진술, CCTV 판독결과 등을 종합해 볼때 김 씨가 라이터를 이용, 점화를 했다는 직접 증거는 없으나 이번 사건의 방화범으로 인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만 김 씨 또한 화재 당시 숨졌으며, 김 씨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측과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보호소 관리책임을 물어 사무소 관리과장과 상황실장 등 4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화재 발생 당시 출입국사무소 상황실장은 잠을 자고, 대리 근무자는 인터넷 게임을 즐겼다"고 지적했다. 이후 참사 당시 당직 근무 직원 2명에게는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가 적용돼 대법원에서 실형이, 소장 직무대리와 경비과장에게는 집행유예가 각각 확정됐다.

보호실 벽면 내부에 쇠창살이

여수외국인 보호소 화재참사 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3층 6개 보호실 벽면은 나무목재로 가려져 있지만 내부는 쇠창살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도주 방지를 위해 설치됐지만 불길 속에서는 생사의 갈림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특히 쇠창살 위 부분 10-20cm 공간은 막혀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사고 당시 연기가 쇠창살 벽면을 통해 빠르게 퍼져 희생자가 늘어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청사는 지난 2005년 1월쯤 완공됐고 도면상에는 보호실과 보호실 사이 벽면은 칸막이벽으로 표시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 전문가들은 보통 칸막이 벽면은 벽돌 등으로 설치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뉴시스

직권조사를 벌인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와 노동청 등에 외국인보호체계 재정립과 보호실 전반에 대한 인권사항 개선이 시급하다고 권고했다. 구체적으로 보호외국인 수용 시 소방 및 안전에 대한 직원교육을 실시하고, 보호외국인 사전 안전대책을 수립하는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고 보호 외국인 권리구제를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고지해 알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도록 제도개선과 관련 직원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것을 주문했다.

화재 발생 1년 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의 실내 바닥은 화재 시 유독가스를 발생시키는 우레탄이 아닌 불에 타지 않는 마루로 전면 교체됐으며, 천장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됐다. 보호실 내 모든 비품은 불에 강한 내화재로 바뀌었고, 화재 당시 열쇠를 찾지 못해 화를 키웠다는 지적에 따라 각 보호실 철창문도 열쇠 하나로 쉽게 열 수 있도록 조치됐다.

한편 법무부와 화재참사공동대책위는 부상자에 대해선 1인당 10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치료를 위해 당사자에게 3년, 보호자 1명에게는 1년간 국내에 머물 수 있도록 '지원 비자'를 발급한다는 데 합의했다. 사망자 유족에게는 1인당 1억~1억1200만원씩 위로금이 지급됐으며, 방화 용의자로 지목된 김 씨 유족에게는 5000만원이 지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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