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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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36 건
2021년 3월26일. 경북 구미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여아 사건에서 수사 기관은 친모가 숨진 아이와 또 다른 아이를 출생 직후 '바꿔치기'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에서 범행 시기와 방법, 동기 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으며 해당 혐의는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 이 판결로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구미 3세 여아 사망은 끝내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아이 엄마인 줄 알았는데 이복자매…친모 정체는?━사건의 시작은 2021년 2월10일이다. 구미시 한 빌라에서 당시 3세였던 A양이 사망한 것을 아래층에 살고 있던 'A양 외할머니' 석모씨(당시 48세)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함께 살던 A양 '어머니' 김모씨(당시 22세)는 몇 달 전 아이만 집에 남겨둔 채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같은 해 2월19일 김씨를 살인과 아동복지법, 아동수당법, 영유아보호법 위반 등 4개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조사 결과 김씨는 전 남편과 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하게 되면서 딸을 혼자 키우고 있었다.
2019년 3월 25일,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 부모 피살 사건의 주범 김다운의 신상이 공개됐다. 이날 경기남부경찰청은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김다운의 얼굴과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했다. 심의위는 김다운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볼만한 증거가 충분한 데다 2명이 숨지는 등 피해가 큰 점 등을 고려해 이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년 전부터 범행 계획…이희진 동생 납치 시도도 ━ 김다운은 2019년 2월 25일 자신이 고용한 조선족 3명과 경기도 안양에 거주하는 이희진 부모 자택에 침입해 이희진 부모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했다. 그는 이희진 부모 시신을 각각 냉장고와 장롱 속에 유기했고, 이튿날 이삿짐센터를 통해 냉장고를 경기도 평택의 한 창고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현금 5억원도 강탈했다. 김다운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희진의 동생도 납치하려고 했다. 김다운은 이희진 부모 자택에서 가로챈 돈가방에서 고급 수입차의 매매 증서를 확인한 뒤 이희진 동생에게 접근했다.
6년 전 오늘 성범죄자 최초로 1995년생 만 24세 남성 조주빈의 신상이 공개됐다. ━"범행 수법 악질적,반복적"━서울경찰청은 2020년 3월 24일 오후 2시쯤 내부위원 3명과 법조인, 대학교수,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등 외부위원 4명으로 구성된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었다. 심의 끝에 이들은 조주빈의 얼굴과 이름,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검거된 지 8일 만이다. 당시 경찰은 신상정보 공개 이유에 대해 "아동·청소년을 포함해 피해자가 무려 70여명에 이르는 등 범죄가 중대할 뿐 아니라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며 "국민의 알권리, 동종 범죄의 재범 방지와 범죄 예방 차원에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심의해 이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의자 신상공개로 인한 피의자 인권 및 피의자 가족과 주변인이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 등 공개 제한 사유를 충분히 검토했다"면서도 "특정 다수의 여성을 노예로 지칭해 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하는 등 범행 수법이 악질적·반복적이었다"고 설명했다.
9년 전인 2017년 3월23일, 전남 진도 앞바다 깊숙이 가라앉았던 세월호가 침몰 107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부서지고 찌그러진 선체는 표면 곳곳 짙은 녹이 슬어 갈색빛을 띠고 있었고 사고 당시만 해도 선명했던 'SEWOL'(세월)이라는 영문 표시도 험한 물살에 바랜 듯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시험 인양이 시작되고 만 하루도 안 돼 본인양에 성공하면서 왜 이렇게 인양 작업이 늦어졌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정부는 맹골수도 거친 기상과 인양 작업에 따른 기술적 문제 때문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정부와 인양업체 간 불협화음과 미흡한 준비가 인양 지연 주된 이유라는 비판이 나왔다. ━ 잔존유 제거·리프팅빔 설치…'첩첩산중' 인양 작업━세월호 수색은 참사 발생 210일 만인 2014년 11월11일 실종자 가족들 요청으로 종료됐다. 이후 정부는 세월호를 뭍으로 끌어내는 걸 검토하기 시작했다. 해양수산부는 2015년 4월 "세월호를 누워 있는 상태 그대로 통째로 끌어내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발표한 뒤 선체 인양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아내가 사라졌다. " 2023년 3월 22일. 필리핀에서 15년간 목회 활동을 한 60대 목사가 법정에 섰다. 목사는 아내를 살해하고 시신을 은닉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가족들에게 이같이 말하며 자신의 범행을 감추려 했다. 하지만 이내 실종신고가 접수됐고 경찰이 수사에 나서며 불륜·살해·암매장을 저지른 그의 추악한 민낯이 세상에 드러났다. ━20대 현지인과 불륜, 아내 항의하자. ━사건은 2022년 8월 필리핀에서 벌어졌다. 대전 한 교회 목사였던 A씨는 선교 활동을 위해 아내와 현지에 머물며 돼지 사육장 등을 운영해왔다. 겉으로는 평온한 선교사 부부였지만 실제로는 오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갈등 배경에는 A씨의 불륜이 있었다. 그는 필리핀 현지 20대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이를 의심한 아내와는 대화조차 어려울 정도로 관계가 악화한 상태였다. 범행 당일 두 사람은 집 안에서 말다툼을 벌였다. 아내가 "목사로서 자격이 있느냐"고 따져 묻자 A씨는 격분했다. 결국 그는 주변에 있던 둔기를 들어 아내를 여러 차례 때려 살해했다.
2024년 3월21일. 인천경찰청 소속 간부급 경찰관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 경찰관은 숨진 배우 이선균 마약 투약 의혹 수사 진행 상황을 담은 자료(수사 진행 보고서)를 사진으로 찍어 기자들에게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그가 빼돌린 자료에는 이선균을 비롯해 그와 관련한 대상자 이름과 전과, 신분, 직업 등 인적 사항 빼곡히 담겨 있었다. ━세 차례 소환 조사…간이시약 검사는 음성━2023년 10월 20일 '40대 남자 배우 L씨'가 마약 투약 의혹으로 경찰 내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기서 배우 L씨는 이선균으로 추정됐다. 온갖 추측이 나도는 가운데 소속사 호두앤유 엔터테인먼트는 보도 다음 날 배우 L씨가 이선균이 맞다고 인정했다. 경찰은 내사 단계일 뿐 혐의가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이선균을 입건했다. 그는 이후 같은 해 10월28일, 11월4일, 12월23일 세 차례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진행된 간이 시약 검사와 정밀 검사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 이선균은 변호인을 통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해달라"는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1995년 3월 20일. 옴진리교 광신도들이 일본 도쿄의 한 지하철에서 독성 가스인 '사린'을 살포해 14명이 사망하고 6300여 명이 다쳤다. 이날 오전 7시 46분쯤 옴진리교 신도들은 도쿄 지하철 3개 노선, 5개 차량에 각각 탑승해 청산가리의 약 500배에 달하는 독성을 지닌 사린 가스를 살포했다. 사린은 신경계에 작용하는 유독 가스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쓰인 바 있는 대량 살상 무기다. 휘발성이 높아 액체 상태에서 빠르게 기화되며 호흡기와 눈, 피부 등을 통해 침투해 수 분 안에 사망에 이르게 한다. 옴진리교 신도들은 지하철 내에 사린을 살포한 뒤 도주했고, 가스에 노출된 시민들은 입에 거품을 물거나 코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근육이 굳어 사지가 마비되는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관제실은 승객들이 쓰러진다는 신고를 받았지만, 이를 화학 테러로 인식하지 못해 즉시 열차 운행을 중단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피해가 확산했다. 지하철 안에서 이상한 냄새를 느낀 한 승객이 발밑에 놓여 있던 사린 팩을 역 플랫폼으로 던져버린 것 역시 피해를 키웠다.
2년 전인 2024년 3월 19일 새벽 5시쯤. 술 취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불법 촬영물을 유포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가수 정준영(37)이 만기 출소했다. 당시 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와 안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전남 목포교도소 문을 나섰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이자 예능 스타로 활약하던 정준영은 충격적인 성범죄로 한순간에 추락했다. 연예계 최악의 성범죄로 꼽히는 이른바 '정준영 단톡방' 사건이다. ━오디션 스타에서 예능 대세까지…성범죄자 '나락'━정준영은 2012년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4'에서 3위에 오르며 실력과 인기를 입증했다. 그는 이듬해 솔로 앨범을 내는 등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독특한 캐릭터와 솔직한 입담으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그러나 2019년 3월 '정준영 단톡방' 사건으로 연예계에서 퇴출당했다. 당시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 사태 수사 과정에서 그룹 빅뱅 출신 승리(36)의 휴대전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이 발견됐는데, 이 대화방에서 정준영이 불법 촬영물을 유포한 사실이 확인됐다.
2021년 3월18일. 교통사고를 위장해 만삭인 캄보디아 국적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남성이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은 교통사고처리법상 치사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고, 살인을 전제로 적용된 보험사기 혐의는 무죄로 봤다. 앞서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로 판단이 엇갈렸다. 2심 재판부는 △ 아내 앞으로 90억원 상당의 보험금이 가입돼 있는 점 △ 아내 혈흔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된 점 △ 부검하지 않고 서둘러 화장한 점 등을 들어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피고인의 손을 들어줬다. ━정차된 화물차 들이받곤…"졸음운전이었다"━사건은 2014년 8월23일 새벽 3시 충남 천안시 부산 방향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했다. 남편 이모(당시 44세)씨가 몰던 승합차가 갓길에 정차돼 있던 8톤 화물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조수석에 타고 있던 임신 7개월차 아내(당시 24세)는 태아와 함께 현장에서 숨졌다. 아내는 당시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의자를 뒤로 젖혀 잠들어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11년 전인 2015년 3월 17일 오전 5시쯤 만 13세였던 여중생 이모양은 신학대 교수이자 목사인 아버지 이씨(47)와 계모 백씨(40)로부터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부부는 나무 회초리, 빨래 건조대 등으로 무려 7시간 동안 어린 딸을 쉴 새 없이 때렸다. 이들은 매를 맞던 딸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경기 부천시 소재 주택의 현관문을 잠근 뒤 이양에게 속옷만 입힌 채 마구 폭행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이양이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도 부부의 잔인한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어린 딸을 때리다가 지친 부부는 이양을 난방이 안 되는 작은 방에 속옷 차림으로 방치한 뒤 낮잠을 잤다. 이후 부부는 오후 6시30분쯤 일어나 중국집에서 음식을 주문 후 이양을 깨우러 갔다. 하지만 어린 딸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11개월 동안 시신 방치…실종 신고했다 덜미━ 이씨 부부는 딸의 시신 위에 이불을 덮어놓고 방치했다. 이씨는 딸이 사망한 지 보름가량 후인 2015년 3월 31일 경찰에 연락해 "딸이 가출한 것 같다"고 실종 신고했다.
1984년 3월16일. 10살 남자아이를 납치하고 강간한 파렴치범이 재판장으로 향하던 중 피해 아동의 부친에게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장면은 뉴스 생중계 중 벌어져 충격을 더했다. 범행 후 아이의 아빠는 현지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성폭행범 제프리 두셋(당시 24세)은 합기도 지도자였다. 중장비 판매원이던 게리 플라우쉬(당시 38세)는 10살 아들 조디를 1983년 초부터 제프리의 수업에 보냈다. 제프리는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사범님'으로 통했다. 게리는 타지역 출신인 제프리를 위해 매주 일요일 가족 식사에 초대하기도 했다. ━10살 소년, 지속된 성추행 피해에도 부모에게 함구…"가기 싫다" 말만━ 제프리는 훈련을 마치면 조디를 차에 태워 집에 데려다줬다. 제프리는 수업 중 스트레칭을 하며 일부러 조디의 성기 근처에 손을 대거나 운전 중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신체를 만졌다. 조디가 당황하면 "실수했다"고 둘러댔다. 조디의 반응을 살피던 제프리는 더 과감해졌다.
1960년 3월15일 치러진 제4대 대통령·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부정선거로 기록된다.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이승만 정권은 권력 유지를 위해 선거 과정 전반에 개입했다. 이는 거센 시민 저항을 촉발했고 결국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한국 정치사에서 부정선거 논란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정권을 무너뜨린 사례는 3·15가 유일하다. ━"법은 나중, 당선부터"…선거 개입한 자유당━부정 선거 핵심은 대통령보다는 부통령 결과였다. 당시에는 대통령이 사망하거나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될 경우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구조였다. 4대 대선에서 자유당 이승만은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상태였지만 부통령 후보였던 이기붕은 민주당 장면과 접전을 벌였다. 장면이 당선되면 대통령 유고 시 정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자유당 내부에서 제기됐고 이후 조직적인 부정선거가 준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주도했던 이는 내무장관 최인규였다. 최인규 후일 재판 판결문 기록을 보면 그가 "어떠한 비합법적인 비상수단을 사용하여서라도 이승만 박사와 이기붕 선생이 꼭 당선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