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7년이 지났지만 입법 공백 문제는 여전하다. '임신 중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 속에서 불법 약물 유통 같은 부가적인 문제까지 잇따르며 제도 정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22대 국회에서 임신 중지에 대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이날까지 총 5건 발의됐다. 개정안에는 '임신 중지'를 재정의하고 보험 적용까지 가능토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하지만 관련 법안들은 아직까지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2019년 헌재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아직까지 후속 입법 절차는 없는 상태다. 당시 헌재는 이듬해 12월31일까지 대체 입법을 마련을 명령했다. 이에 정부 개정안 등이 발의됐지만 제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됐다.
입법·행정 공백이 길어지면서 기본적인 실태 파악도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임신 중절률 통계는 202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내용이 가장 최신 자료다. 국가 공식 통계는 없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낙태죄 폐지 후 보건복지부가 통계를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실태조사는 공식 통계가 아닌 온라인조사나 여론조사 등이 전부라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임신중지약물 도입 문제도 남아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임신중지약물인 '미프진'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도 받지 못했다. 의사의 처방을 받아 합법적으로 임신중지약물을 복용할 수 있는 경로는 현실적으로 없는 셈이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임신 중지 약물에 대한 온라인 불법판매 알선·광고 적발건수는 총 2971건이다. 여성들이 임신 중지를 위해 확인되지 않은 약물을 복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문제점으로 꼽힌다.
해외와 달리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신뢰도 높은 정보가 부족해 임신중지가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법원 판결이 나온 '36주 낙태 사건'이 대표적이다. 시민단체들은 해당 산모가 정보력의 한계로 브로커까지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제도 미비 문제를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관련법 개정보다 약물 도입이나 건강보험 적용 등 안전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결정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현정 셰어 기획운영위원(변호사)은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전인적 결정인데 정책은 바뀌지 않는 실정"이라며 "약물 도입이나 건강보험 적용 등은 입법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빨리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장은 "입법 공백 장기화는 결국 접근성이 취약한 저소득층·미성년자 등에 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며 "임신 중지와 관련해 사회가 대립한 상태인데 어느 정도 선에서 매듭을 지을 수 있도록 (상대 의견을) 수용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