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용품 '리얼돌'의 수입을 제한한 세관 조치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관련 논쟁에 다시 불이 붙였다. 법원은 미성년자나 특정 인물을 본뜬 제품이 아니라면 사적 영역에서 성인용품을 사용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고 봤지만, 리얼돌이 성인식 왜곡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4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대법원은 지난 2월 리얼돌 수입업체 A사가 김포공항세관장을 상대로 낸 수입통관 보류처분 취소 소송에서 A사의 손을 들어줬다. 리얼돌이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며 통관을 막은 세관의 조치가 위법하다는 1·2심 판단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은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대법원은 앞서 2019년과 2021년에도 노골적으로 성적 부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거나 16세 미만 미성년자의 외관을 본뜬 게 아니라면 수입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관세청도 2022년 미성년 형상이나 특정 인물을 닮은 경우에는 수입을 금지하되 성인 형상 리얼돌의 통관은 허용하는 방향으로 수입통관 지침을 개정했다.
이번 판결 역시 기존 기준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법원은 A사가 수입 신고한 리얼돌이 여성의 모습을 자세히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금지 기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 "사용 목적과 주체, 사용될 공간과 환경 등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을지를 조사하지 않고 물품의 외관 검사 결과만으로 보류 처분을 한 것은 위법하다"고 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전문가 사이에서는 리얼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외형 문제를 넘어 리얼돌이 사회에서 소비되는 맥락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7일 국회전자청원 사이트에는 '리얼돌 수입 및 통관 반대에 관한 청원'이 공개됐다. 해당 청원은 5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소관 위원회에 회부됐다. 청원인은 "리얼돌은 단순한 성인용품을 넘어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며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리얼돌의 무분별한 수입 및 통관에 반대하며 명확한 규제 법안 마련을 촉구한다"고 적었다.
여성의당도 지난달 8일 대법원 앞에서 해당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지난달 28일에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리얼돌 제작·판매·유통 규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리얼돌은 외형의 음란성 여부와 관계없이 사람의 형상을 띠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해로운 것"이라며 "동의 없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리얼돌을 사용하며 현실의 여성에게도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학자들의 가장 큰 우려"라고 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선 성관계를 상호 간 동의와 애정, 보살핌에 기반한 행위로 인식하려는 노력조차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며 "미성년자의 신체 상품화는 금지하면서 성인 여성의 신체를 상품화하는 것은 괜찮은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법원 판례가 나올 때마다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는 만큼 리얼돌 유통·소비를 어떻게 규율할지 국회가 입법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태연 태연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수입이 허용되면서 리얼돌을 악용하는 이들이 나와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수입을 제재하는 법적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악용 행위에 대한 형량 등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