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법정에서 변호사를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직접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AI(인공지능) 사용이 급증하면서 이 같은 '나홀로 소송'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사법 접근성이 확대된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9일 대법원이 펴낸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4년까지 전체 민사 재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소액 사건에서의 나홀로 소송 비율은 평균 약 80%대를 기록했다. 특히 2024년 전체 민사 사건 78만6085건 중 어느 한 쪽이라도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사건은 70만5567건으로 나타났다. 비율로 따지면 약 90%에 이른다.
나홀로 소송 비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이유로 가장 먼저 변호사 비용 문제가 꼽힌다. 소송 가액이 3000만원 이하로 낮은 민사 소액 사건의 경우 변호사를 선임해 수임료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전자소송 시스템의 보편화로 집에서 소장을 접수하고 재판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향후 나홀로 소송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날이 갈수록 AI가 똑똑해지고 있어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률 전문 AI가 아닌 일반 AI도 의견서 등을 훌륭하게 작성해준다"며 "변호사가 아닌 AI 도움을 받아 소송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실제 서울중앙지법 민사 소액 법정에서 만난 나홀로 소송 당사자들은 예외 없이 AI를 활용해 재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동산 매수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해 중개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낸 30대 윤모씨는 "AI가 요건이 성립되는 소송이라고 답해줘 소송을 시작했다"며 "법 지식이 전무한 일반인으로서 소송의 정당성 및 승소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는데 AI를 믿고 소송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나홀로 소송의 증가는 한국에서만 두드러지는 현상이 아니다. 소송 당사자가 반드시 변호사에게 소송 행위를 대리하게 하는 '변호사 강제주의'가 도입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나홀로 소송이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인데 최근 미국 역시 AI를 활용해 법원에 서류를 제출하는 소송 당사자들이 늘어났다. 미국 내 나홀로 소송 비율이 70%대에 달한다는 수치도 있다.
문제는 AI에 과도하게 의존해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들이다. 전문가인 변호사를 배제한 채 일을 진행하다보면 돌이키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본인에게 불리한 서면을 제출하거나 '할루시네이션'(환각) 탓에 존재하지 않는 판례로 논리를 짜는 등의 경우다. 이 경우 소송을 그르칠 위험이 크다. 법원 행정력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변호사는 "민사 소송은 당사자에게 필요한 사실관계를 찾아내고 맞는 증거가 있는지 찾는 작업이 중요하다. 아직까지는 AI가 해내기 힘든 영역"이라며 "나홀로 소송을 하게 되면 자기만의 시각으로 사실관계나 증거를 바라보고 자의적으로 판단을 하게 된다. 빠르게 법적 조언을 들었으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소송도 패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홀로 소송이 이미 법원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률지식이 부족한 당사자가 사실관계와 법률 주장을 뒤섞어 제출하면 재판부가 보정명령을 내리거나 추가 설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사자 입장에서는 비용을 아낄 수 있지만 법원 전체로 보면 시간과 인력이 더 드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법원 업무 부담 가중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나홀로 소송을 시작 단계부터 적극 돕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 국립주법원센터(NCSC)에 따르면 법원 내 셀프헬프센터는 민사사건 당사자들에게 △필수 법률정보 △절차 안내 △기관 연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당사자가 더 잘 준비된 상태로 재판에 들어오도록 돕는다.
반면 AI를 활용한 나홀로 소송의 증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공존한다. 변호사 선임 비용 부담이나 복잡한 절차 때문에 소송을 포기하던 시민들이 직접 소송에 나설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민사소송 경험이 있는 한 시민도 "변호사 비용이 청구금액보다 더 커서 AI로 판례를 찾고 분석해 직접 진행한 적이 있다"며 "절차가 쉽지는 않았지만 아예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절차나 비용 문제 때문에 권리구제 자체를 포기하던 사람들이 AI를 활용해 직접 법원에 가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사법 접근성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