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억울합니다."
2020년 5월10일 새벽,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50대 남성이 자신의 집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의 자필 유서를 남긴 그의 죽음 배경에는 입주민 '갑질'이 있었다. 한 아파트 주민이 폭언과 폭행, 협박, 감금 등을 일삼으며 그를 괴롭혔고 이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사회는 '갑질'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돼 온 경비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
사건은 2020년 4월21일 시작됐다. 당시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고(故) 최희석씨는 삼중 주차된 입주민 심모씨 차량을 손으로 밀어 이동시켰다.
이 일로 격분한 심씨는 최씨를 폭행해 얼굴 부위에 약 2주간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입혔다. 이어 같은 달 27일에는 최씨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 그를 경비실 화장실로 끌고 가 약 12분간 감금한 채 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최씨는 코뼈가 부러지는 등 추가 피해를 입었다.
감금 폭행 후 심씨는 최씨에게 "사표를 쓰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괴롭힌다"는 취지로 협박하기도 했다.
괴롭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심씨는 최씨가 관리소장 등에 '입주민으로부터 멱살을 잡히는 등 폭행을 당했다'는 취지로 거짓말을 하는 등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허위 고소장을 제출했다.
최씨가 재차 경찰에 신고하자 심씨는 '나도 폭행 진단서를 발급받았으니 이에 따른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문자메시지 등을 보내며 그를 압박했다.
집요한 괴롭힘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최씨는 같은 해 5월10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최씨가 남긴 음성 유서에는 피해 당시 상황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최씨는 "(2020년 4월) 21일날 폭행이 시작됐다"면서 "23일에도 괴롭히고, 25일에도 괴롭히고, 27일에는 화단에 물을 주고 있는데 심씨가 나타나 감금 폭행했다"고 했다.
이어 "심씨가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 CCTV를 세 차례 있나 없나 확인한 후 '아주 이 XX CCTV 없구나, 잘 됐구나 아주 오늘 죽어봐 이 XX야' 그러면서 모자를 벗겨 때리기 시작했다"며 "머리를 여러 차례 쥐어박고 소매를 당겨 옷이 찢어졌다"고 했다.
최씨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음성 유서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으로 경비원이 맞는 일이 없도록 꼭 밝혀달라", "신문과 방송에서 꼭 공개해달라"고 호소했다.
심씨는 같은 해 6월12일 상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보복감금·보복상해·보복폭행), 무고, 협박 등 총 7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심씨는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지만 법원은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대법원 양형기준상 권고 형량은 징역 1년~3년8개월이지만 여러 사정을 종합해 권고 형량 범위를 벗어나 형을 정했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판결에 불복한 심씨는 항소와 함께 보석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 역시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설득력 없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상황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와 언론, 검찰, 법원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이 여러 차례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진심 어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작 사과해야 할 피해자 유족들에게는 사죄하지 않았고 사건 발생 1년이 지나도록 용서받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간 끝에 2021년 8월29일 징역 5년이 확정됐다.
사건 이후 사회 곳곳에는 변화가 나타났다. 지방자치단체와 아파트 단지에는 "경비원에게 폭언·폭행을 하지 말아달라"는 안내문이 붙기 시작했고, 고용노동부는 공동주택 관리 현장의 괴롭힘 실태 점검에 착수했다. 일부 지자체는 경비 노동자 인권 보호 조례를 강화하기도 했다.
사회적 인식 역시 달라졌다. '경비원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왜곡된 갑을 문화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졌고 노동자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확산했다.
2021년 근로복지공단이 최씨 사망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것도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공단은 입주민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