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미국 나스닥 ADR(주식예탁증서) 상장은 단순한 해외 자금조달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기업가치를 다시 평가받겠다는 자신감을 반영했다. 실무적으로는 20년 가까이 국내에 선례가 없었던 대형 ADR 상장이어서 여러가지 복잡한 법률 및 규제당국 관련 이슈를 풀어야 했다.
이번 거래를 이끈 법무법인 세종의 박용진 변호사와 진시원 수석전문위원은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이번 거래는 향후 국내 기업들의 ADR 발행 실무와 관련해 하나의 기준을 세운 프로젝트였다"고 평가했다.
ADR은 국내 기업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미국에서 거래되는 예탁증서를 발행하는 방식이다. 해외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글로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SK하이닉스 ADR은 미국 증시에 상장한 외국 기업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 IPO(기업공개)이자 미국 IPO 역사에서도 두 번째 규모다.
SK하이닉스에 자금 조달 목적만 있었다면 미국 증시에 상장할 필요는 없었다. 박 변호사는 "이번 ADR 상장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대 자본시장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해외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가치를 다시 평가받겠다는 회사의 자신감이 반영된 결정"이라고 했다.
20년간 없었던 ADR 상장을 성사시키기 위해 SK하이닉스와 세종은 시간과의 싸움을 벌어야 했다. 미국 규정상 증권신고서에 포함된 가장 최근의 재무정보의 기준일로부터 135일 안에 공모 절차와 납입 등 상장 일정을 모두 완료해야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일정이 지연되면 이후 최신 재무정보를 반영해 증권신고서를 다시 작성해야 하고 상장도 늦어질 수 있었다.
진 위원은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뒤 금융당국의 정정 요구가 많아지면 일정이 계속 밀릴 수 있어 정정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며 "위기도 있었지만 정해진 일정대로 마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세종은 이번 거래를 위해 일반 기업 IPO의 3배 정도 되는 인력인 약 20여명을 투입했다. 이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발생하는 법률 이슈에 대응해야 했고 밤에도 시차 때문에 쉬지 못했다. 박 변호사는 "9개월 동안 정말 뼈를 갈아 넣었다"며 "새벽 3~4시에 퇴근하는 날이 많았고 시차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관련 이메일이 쌓여 있었다"고 회상했다.
상장 직전 SK하이닉스 주가가 출렁였을 때는 프로젝트 관계자들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IPO는 특성상 시장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 프로젝트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그렇게 피를 말리는 9개월을 보낸 뒤인 지난달 10일(현지시간) SK하이닉스는 미국 뉴욕 나스닥 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상장 기념 '오프닝 벨'을 울렸지만 끝난 건 아니었다. 미국 시장에 상장한 이후에는 납입 절차와 함께 ADR 발행이 정상적으로 완료되는지 마지막까지 확인해야 했다.
박 변호사는 "해외 로펌에서 ADR 발행이 완료됐다는 메일을 받고 비로소 끝났다는 안도감을 느꼈다"며 "이번 프로젝트는 기존에 없던 길을 처음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한국 자본시장 역사에 의미 있는 거래를 만들었다는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