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밥그릇으로 썼는데, 유물이었어?...700년 잠든 '보물선' 등장[뉴스속오늘]

이재윤 기자
2026.10.11 06:11
1976년 10월 11일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은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해저 유물을 조사하기 위해 '신안해저유물 발굴조사단(이하 발굴조사단)'을 구성했다. 사진은 선체인양 모습./사진=전남 신안군

'신안 보물선' 발굴 시작.

1976년 10월 11일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은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해저 유물을 조사하기 위해 '신안해저유물 발굴조사단(이하 발굴조사단)'을 구성했다. 14세기 동아시아 무역선, 일명 '신안 보물선'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정식 수중 발굴 조사가 첫 발을 뗀 순간이다. 올해가 딱 50년째 되는 해다. 이날 발굴조사단이 구성됐고, 같은 달 26일부터 현장 조사가 시작됐다.

국내 수중고고학 역사상 최초로 시도되는 '국가 주도의 해저 유적 발굴 조사'였다. 이번 발굴조사단 출범은 700여 년간 바닷속 갯벌에 매몰되어 있던 중세 동아시아 해상 교역의 실체를 규명함과 동시에, 도굴꾼들에 의해 심각한 유실 위기에 처했던 수중 문화유산을 국가가 직접 보호하고 과학적으로 인양하기 위해 전격 추진됐다. 이 발굴은 국내 수중고고학이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어부의 그물에 걸린 청자 6점…보물선의 시작

신안 해저유물이 알려진 계기는 1975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앞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어부 최모씨의 고기잡이배 그물에 도자기 6점이 걸려 올라왔다. 당시 어민들은 바다에서 도자기가 건져 올려져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해 바다에 다시 던져 버리거나 집에서 개밥그릇, 재떨이 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최씨는 자신이 건져올린 이 유물을 신안군청에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한 문화재 관리 당국은 이 도자기들이 중국 남송·원나라 시대 유물이란 것을 확인하고 이 일대를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당시엔 바닷속 문화유산을 탐사하고 인양할 전문인력과 수중 장비, 보존 시스템이 전무했다. 발빠르게 유물을 보존하고 탐사를 시작해야 했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면서 발굴은 늦어졌다.

사진은 신안선 인양 유물을 선상에서 정리하고 있는 모습./사진=신안군

정부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들이 있었다. 바닷 속에 유물이 있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굴꾼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언론을 통해 '수억대 가치의 보물선', '해저 노다지'란 소식이 알려졌고 전국의 도굴업자, 검은 돈들이 신안 앞바다로 밀려들었다. 도굴꾼들은 당국의 눈을 피해 밤낮으로 잠수부를 투입해 청자 화병과 백자 등 최고급 유물들을 불법 인양해 밀매했다.

당시 도굴꾼 정모 씨 등 일당 8명이 1976년 9월 1일부터 22일 사이 청자 화병 등 122점을 불법 인양해 암거래하려다 경찰에 검거되는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수사 당국은 도굴범 10여명과 311점의 유물을 회수했다. 최근 방영 돼 인기를 끈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파인: 촌뜨기들'은 이 당시 신안선 도굴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도 도굴 유물이 발견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당시 도굴한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가 2019년 국외로 반출하려던 A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A씨는 청자접시 등 신안해저유물 57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2019년 6월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은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와 공조해 사적 제274호 신안해저유물 매장해역에 매장됐던 1980년대 도굴 유물을 취득, 은닉해 온 A를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사진=뉴시스

9년간 3400시간의 해저 작업… 2만7000여 점 대거 출토

정밀 감정결과 이 유물들이 14세기 완벽한 형태의 최고급 도자기로 확인되면서 정부 발굴 조사에 탄력이 붙었다. 당시 조사에는 문화재관리국을 중심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해군이 참여하고 전라남도와 신안군 등이 지원했다. 특히 수중 작업에는 해군 해난구조대 잠수사들이 투입됐다. 국내 고고학계에 수중 발굴 경험이 거의 없었던 만큼 해군의 잠수 인력과 장비가 투입됐다.

발굴 현장인 신안 증도면 방축리 해역은 수심 약 20m로 강한 조류와 유속, 갯벌 부유물로 인한 극심한 수중 시야 방해 등 '최악의 해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국내 고고학자 중 수중 다이빙이 가능한 인력이 단 한 명도 없었던 상황에서, 정부는 대한민국 해군 특수부대인 해난구조대(SSU) 심해 잠수원 약 200명을 투입했다. 이들이 유물을 인양하고 선상에서 고고학자들이 이를 받아 기록하는 학·군 발굴 체계가 구축됐다.

신안선 복원도(우측면도)./사진=신안군

이렇게 시작된 조사가 마무리 되기까진 9년이 걸렸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11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진행된 이 조사에는 9800여명의 인원이 투입됐다. 암흑같은 해저에서 수행한 작업 시간은 3400여 시간에 달했다. 이 결과 2만7000여 점이 넘는 방대한 유물이 출토됐고, 이를 통해 '14세기 동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의 실체가 드러났다.

신안 보물선의 실체도 확인됐다. 1323년 중국 원나라 경원항(현재 저장성)을 출발해 일본으로 향하다 난파된 240톤급 대형 목조 무역선(신안선)의 선체 잔존부(잔존 길이 28.4m, 너비 6.6m)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고급 청자·백자 등 도자기 2만660여 점과 중국 동전 28톤(약 800만 개), 고려청자 7점 등도 있었다.

신안선 수중 발굴은 대한민국에 '수중고고학'이란 학문적 기틀을 세운 역사적 사건이었다. 신안 해저 유적은 1981년 사적 제274호(현 신안 해저유물 매장해역)로 지정돼 국가 사적으로 영구 보존되고 있다. 특히 도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차원의 수중 발굴이 시작되면서 '해양 문화유산 선도국'으로 도약하는 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6년 신안 해저발굴 40주년' 특별전./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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