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밀고 가요, 조심하면 되는데.
지난 3일 오후 6시 퇴근길 인파로 북적이는 서울 마포구 망원역 일대. 퇴근 후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시각장애인 류지왕씨(34)는 자전거를 끌던 행인과 부딪힌 뒤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점자블록이 끊긴 인도를 지나 오토바이 등 장애물을 피해 어렵게 걸어온 참이었다.
'11·4 한글 점자의 날'을 맞아 지난 3일 류씨의 퇴근길을 동행했다. 올해는 한글 점자 '훈맹정음'이 만들어진 지 100년, 점자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여전히 일상 곳곳에서 점자 안내 부족으로 불편을 겪고 있다.
류씨의 직장에서 망원역 2번 출구까지는 비장애인 기준 도보 6분 거리다. 하지만 류씨가 역에 도착하기까지는 두 배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인도 곳곳에서는 점자블록이 끊겨 방향을 잡기 어려웠다. 식당 야장 쪽으로 들어설 뻔하거나 주차장 볼라드에 다리를 부딪치기도 했다. 류씨는 "점자블록이 중간에 끊기는 구간이 있다"며 "망원역에서 몇 걸음 걸으면 어떤 지점이 나오는지 외워두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익숙한 길이라도 돌발 장애물까지 피하기는 어렵다. 류씨는 "자전거나 차가 점자블록 위에 주차된 경우가 있다"며 "이런 장애물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는 게 가장 불편하다"고 말했다.
지하철역에 도착한 뒤에도 난관은 이어졌다. 시각장애인은 난간 끝에 설치된 점자 안내를 통해 역정보를 확인한다. 하지만 망원역 2번 출구는 우측통행이 제한돼 난간을 따라 이동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우측통행을 막는 안내판은 설치돼 있었지만 점자 표기는 없었다. 류씨는 결국 역 직원의 도움을 받고서야 역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일상 속 불편은 이동에만 그치지 않았다. 식사를 위해 찾은 식당에서도 점자 안내를 찾아볼 수 없었다. 키오스크 주문부터 반찬 뜨기, 퇴식까지 모두 직접 해야 하는 곳이었다.
류씨는 "이럴 때는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메뉴판에 점자가 없는 가게도 많다"고 말했다. 2년 전 한 식당에서는 물컵을 부탁했다가 바쁘다는 직원에게 "혼자서는 오지 말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공동주택 현관에 설치된 터치식 키패드도 장벽이다. 류씨는 "버튼을 잘못 눌렀다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 않느냐"며 "다른 사람이 와서 도와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점자 안내가 부족한 현실은 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국립국어원의 '2025 국민의 점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중 86.8%는 '일상생활에서 점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필요한 상황에 점자 표기가 없어서'(36.5%)를 꼽았다.
전문가들은 점자 표기를 확대하는 동시에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키오스크 등 터치스크린이 보편화하면서 특히 고령층 점자 사용자들이 정보 접근에 취약해졌다"며 "건축설계 단계에서 배리어프리를 확인하듯 신기술 제품도 개발 단계부터 장애 포괄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일 조선대 특수교육학과 교수는 "약사법 개정으로 일부 의약품에 점자가 표기되는 등 변화가 있지만 민간 시설이나 제품에는 점자 표기가 미흡한 경우가 많다"며 "시각장애인도 점자를 통해 평등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