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화두였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회가 왔다며 들떴다. 어느새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이 됐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언급된 이후부터 지난 2년새 일이다. 하지만 한 편에선 실체가 없는, 그럴싸해 보이는 구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지난해까지 언론과 각종 포럼, 세미나 등을 장식했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분위기가 최근엔 시들해진 것도 감지된다.
대한민국 대표 싱크탱크 중 하나인 여시재의 이명호 박사는 "4차 산업혁명이든 아니든 확실한 것은 변화의 시작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그럴듯 한 용어에 매몰돼서도 안되지만, 분명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간과해서도 안된다는 의미다.
머니투데이 미디어 글로벌 컨퍼런스 키플랫폼 팀은 25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이 박사를 만나 지금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4차 산업혁명이 크게 이슈가 된 게 1~2년 전이다. 지금은 다소 분위기가 가라앉은 듯 하다. 4차 산업혁명의 실체와 명칭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산업혁명'보다는 '디지털혁명'이 맞다고 본다. 증기기관·엔진이 산업혁명을 촉발했는데, 그 이후 여기저기 다 엔진이 들어갔다. 기차 등 운송수단 뿐 아니라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도 동력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 엔진이 범용기술이 됐다. 이후 컴퓨터가 나왔다. 컴퓨터 역시 단독으로 쓰이는 도구였다가, 그 다음 네비게이션, 스마트폰 등 거의 모든 제품에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산업혁명이 아니란 얘긴가?
▶지금은 컴퓨터가 범용기술이 된 사회다. 엔진이 만든 산업사회와는 다른 사회라 볼 수 있다. 산업사회와 대비되는 디지털사회의 시작이라는 의미다. 지금은 3차 산업혁명에서 시작된 디지털혁명이 본격화 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산업혁명보다는 디지털혁명이 좀 더 명확하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결론적으로 디지털혁명이라 하든,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든 어쨌든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그 동안 패스트팔로어(새로운 제품·기술을 빠르게 쫓는 전략 또는 기업) 전략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패스트팔로어를 넘어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조그만 부분에서 실험을 끊임없이 하고, 실험의 결과를 틀에 맞춘 잣대로만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과정이나 결과를 너무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선진국도 모든 시도가 성공하는게 아니다. 실패가 훨씬 더 많은데 단지 실패의 경험을 잘 흡수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은 실패를 용인해주는 문화가 약하지 않나.
▶대한민국도 실패를 못 받아들일 나라가 아니다. 경제적 상황 등 여력이 있다. 중국이 최근 여러 분야에서 앞서 나가는데 사실 법이나 사회 체계가 잘 짜여진 사회가 아니어서 새로운 기술이 나왔을 때 다양한 시도를 할 틈이 많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3찬 산업혁명까지는 자신들이 뒤쳐졌지만, 4차 산업혁명은 동일 출발 선상에 있고 선두가 될 기회가 왔다고 이야기한다. 이게 무서운 생각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AI(인공지능)가 꼽힌다. 정부는 AI에 5년간 2조원 규모를 투자 하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수십년 간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 온 미국, 중국의 기술을 따라잡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기술개발 보다는 AI를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가 어떤 분야는 확실히 앞선다, 이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라는 것을 찾는 것이 선진국이냐 아니냐의 차이다. 막연하게 기술 수준을 높이겠다라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를 들어 9.11 테러 발생 후 확인하니 미국의 여러 정보 당국이 테러 사전 조짐을 파악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그 정보들이 종합이 안 돼 놓친 것이다. 방대한 정보기관의 정보를 사람이 통제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에서 그 분야 AI 연구를 본격화 했다.
-또 다른 예가 있나?
▶애플 시리도 마찬가지로 군사 지휘에서의 효율성을 위해 시작한 음성인식 기술 개발에서 나왔다. 음성인식 기술은 이미 우리나라도 10여 년 전부터 있었지만 단지 기술만 있었던 것에 반해 시리는 확실한 니즈(필요성에 따른 요구)가 있어 더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상용화 됐다.
-결국 니즈가 중요하단 얘긴가?
▶니즈를 통해 어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겠다는 사고 없이, 기술만 개발하려고 하면 발전이 없다. 민원이라든지 의료정보라든지 우리가 경쟁력이 있는 분야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확실한 니즈가 있고 그 분야의 AI를 집중해서 개발한다면 AI 기술 자체는 다른 선도 국가들의 것을 가져다 쓰더라도 그 분야에서 우리가 최고가 될 수 있다.
-최근 책 '노동4.0'을 펴냈다. 주제를 노동으로 잡은 이유는?
▶처음에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썼는데 워낙 많이 나온 얘기라 차별화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노동4.0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 없어 노동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한국 사회의 과제가 무엇인지 썼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어떤 방식으로든 AI, 로봇, 기계와 사람이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즉 노동4.0을 다루는 것이 곧 4차 산업혁명 이야기라고도 볼 수도 있다. 급속한 자동화가 가져올 일자리의 위기가 쓰나미처럼 몰려올 때를 대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좋은 노동이란 과연 무엇인가?
▶과거에는 8시간 노동, 정규직과 같은 조건이 좋은 노동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노트북을 들고 해변가에서 일하는 모습과 같은 것이 좋은 노동으로 평가 받는다. 내가 원하는 시간, 장소에서 일하는, 노동에 대한 결정권을 자기가 가지는 것이 기본이다. 이에 더해 일과 삶이 균형을 이뤄서 일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화가 가져오는 가장 큰 변화가 유연성이다. 그 유연성을 잘 활용하는 게 좋은 노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