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를 5000 코앞까지 끌어내린 4거래일 연속 약세의 배경엔 국내 반도체주 쌍두마차의 후퇴가 자리한다. '터보퀀트(TurboQuant)'가 촉발한 메모리 수요둔화 공포감이 미국 반도체주 급락을 촉발한 데 이어 국내로 옮겨붙으며 증시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31일 한국거래소(KRX)에서 삼성전자는 16만7200원, SK하이닉스는 80만7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구글이 터보퀀트를 소개하기 직전인 지난 24일과 비교하면 각각 11.86%, 18.15% 내린 수준이다.
반도체주들의 주가부진은 뉴욕증시에서 더 선명하게 나타났다. 30일(현지시간) 종가 기준 주간 하락률은 마이크론 20.42%, 샌디스크 18.50%로 집계됐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8.12% 내렸다.
같은 날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기준금리 인상 불안감을 완화하는 발언을 내놓는 와중에도 미 반도체주들은 약세를 면치 못한 터다. 증권가에선 당혹감이 감돈다. 산업·증시 전문가들이 터보퀀트의 등장을 실질적 악재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하는 와중에도 매도물량 출회가 잇따라서다.
특히 국내에선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대거 팔아치우는 외국인 행렬이 두드러진다. 이날도 매도 상위창구에선 메릴린치·모간스탠리·JP모간·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증권사가 이름을 올렸다.
강재구 하나증권 연구원은 전날 미국주식 보고서에서 "현 시점에 더 중요한 것은 계속되는 강력한 투자 사이클"이라며 "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메타·오라클·아마존 등 초대형 플랫폼 기업들의 올해 연간 자본지출 컨센서스는 연초 5131억달러에서 6415억달러로 상향됐다"고 밝혔다.
강 연구원은 "엔비디아도 블랙웰·베라루빈을 중심으로 내년까지 1조달러 이상의 매출 기회를 언급하며 인공지능(AI)이 디지털을 넘어 물리적 세계로 확장될 것을 시사했고,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메모리 사용 총량이 늘어날 수 있다"며 "현 시점에서 터보퀀트는 수요 파괴보다 경제성을 높이는 기술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국내 반도체주에 대해 "트렌드포스에서 올 1·2분기 메모리 가격전망을 상향했고, 모든 전방산업향으로 메모리 가격이 예상보다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연초 이후 주가 상승폭이 양호했기 때문에 증시 전반의 불안정한 이벤트가 차익실현을 자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기술의 실효성과 보편화 여부, 메모리·설비투자(CAPEX) 효율이 절대 수요량을 재차 자극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주가 반응이 과도하다"며 "업황과 실적에 집중하는 투자전략이 필요한 시기"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