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금이 외국인 행세…IPO 청약서 '검은머리' 논란

김경렬 기자
2026.07.21 15:24
/사진=금융감독원

증권사에 수수료 기여도가 높은 외국인이 국내 IPO(기업공개)에서 많은 주식을 배정받으면서 국내 기관투자자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IPO 청약에서도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해외 기관은 의무 보유기간 확약을 1건도 걸지 않았다.

상장주관사가 국내 기관투자자들에게 적용되는 의무보유 확약 규제, 배정비율 등을 우회해 해당물량을 배정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문제는 이들이 외국인으로 분류되고는 있지만 실제 투자 재원은 국내 펀드자금인 '검은머리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국내 펀드로 투자금을 모아 해외에서 재간접펀드를 출시해 외국인 투자자로 위장해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오는 24일 코스닥에 상장할 예정인 에이치엘지노믹스의 배정현황을 살펴보면 외국 기관투자자는 총 23만850주를 배정받았고 모두 확약 기간을 걸지 않았다. 이에 반해 국내 투자자의 미확약 비중은 운용사(집합) 36.14%, 연기금·운용사 고유계정·보험 4.50%, 기타 56.53% 등을 각각 기록했다.

에이치엘지노믹스에 투자한 외국인은 수요조사 단계부터 확약을 걸지 않았다. 에이치엘지노믹스의 IPO 대표주관사는 KB증권, 공동주관사는 IBK투자증권이다.

IB(투자은행) 업계에서는 국내 기관투자자는 대부분 확약을 걸어 물량을 배정받기 때문에 외국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이라는 평가다. 법률이나 규제에 따라 획일한 잣대로 배정 물량을 분배하지 않지만 국내 운용사 등 투자 기관은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확약을 걸지 않는 것은 사실상 어렵단 것이다.

PBS(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 업계 한 관계자는 "외국계 증권사 또는 외국계 운용사랑 파생 스왑 계약을 맺어 국내 청약에서 이득을 보는 경우가 있다"며 "확약을 걸지 않은 해외 기관에 대해 증권사가 우대 배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확인할 방법은 없어 명확한 기준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IPO에 투자하는 외국인이 실제로는 국내 투자자금인 경우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ABP자산운용은 'ABP 글로벌 IPO 일반사모투자신탁 제1호'를 국내에서 운용하고 있다. 펀드는 지난 2월11일 설정됐다. ABP자산운용의 펀드는 피보나치자산운용의 해외 재간접 펀드를 담고 있다. 해외 재간접 펀드는 주식, 채권, 선물 등 다양한 상품에 분산투자하는 효과가 있다. 구조가 복잡한 만큼 수수료가 높다. 이런 재간접 펀드로 외형을 확대한 결과, 출시된 지 5개월 만에 설정액은 169억원에 이른다.

이런 해외 재간접 펀드는 국내 주식과 선물 매매로 증권사의 수수료 수익 성장에 기여하면서 공모 청약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예를 들어 해외 재간접 펀드가 어떤 증권사를 통해 주식을 대량 매수하고, 주식선물은 헤지성 매도를 한다. 매도와 매수를 한 번에 진행하는 과정을 통해 금전적인 손실 없이 수수료 수익이 발생한다. 거래를 반복하면 해외 재간접 펀드의 증권사 수수료 기여도율이 높아진다. 이에 따라 해외 재간접 펀드는 공모주 배정에서 대가성 혜택을 받게 된다.

해외 재간접 펀드는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만큼 의무보유 확약에서도 국내 기관투자자에 비해 자유로운 계약이 가능하다. 상장 당일 주가가 오르면 곧장 매도할 수 있는 물량으로 일반 주주나 의무확약으로 IPO에 참가한 투자자에게는 오버행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주식발행시장(ECM) 업계 한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해외 재간접을 통한 우회 물량을 걸러내려 노력하고 있지만 모든 경우를 검증할 수 없는 한계점이 있다"며 "외국인에 대한 배정 기준은 있지만 증권사마다 제각각이라 어떤 방식을 확정적으로 답변하긴 어렵다"고 했다.

한편 금융당국에서는 국내 기관투자자 의무보유 확약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의무보유 배정비율은 코스피 54.9%, 코스닥 39.6%로 전년 대비 각각 13.6%포인트, 23.8%포인트 상승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