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산업 수익성 부담에 미국 증시가 급락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이 주식시장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I 투자 확대에 대한 기대가 꺾이면 반도체 수요가 둔화하는 데 이어 관련 기업의 대출과 회사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가 급락에 따른 단기적인 손실뿐 아니라 기업금융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는 반도체주에 집중된 신용융자가 당장의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중장기적으로는 AI 투자 축소 시 데이터센터의 수익성과 관련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금융회사와 펀드가 손실을 줄이기 위해 보유자산을 동시에 매각하면 주식과 채권시장에 추가 충격을 줄 가능성도 있다.
AI 수익성 우려에 美증시 급락…韓 반도체 빚투 부담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지수는 2.86% 급락했다. 인텔과 아마존의 실적 및 투자계획을 계기로 막대한 AI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영향이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도 7.2% 하락했다. AI 산업의 성장 기대보다 실제 수익을 낼 수 있는지가 증시를 좌우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해외 금융당국 등은 AI 투자 위축이 다른 금융시장으로 확산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23일 금융시스템 보고서에서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고 해외 펀드 등이 보유자산을 줄이면서 충격이 증폭되는 상황을 분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5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AI 관련주 고평가와 차입 확대에 대한 시장 참가자들의 우려를 소개했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지난달 27일 AI 데이터센터 사업자뿐 아니라 관련 대출에 투자한 금융회사와 펀드에도 은행 자금이 공급되면서 금융시장 간 위험이 연결되는 구조를 분석했다.
AI 산업의 수익성 악화가 국내 반도체 기업에 미치는 영향도 주목할 부분이다. 미국 대형 기술기업들이 투자계획을 축소하면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고성능 반도체의 수요 증가세가 둔화할 수 있다. 이는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실적 전망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주가가 향후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를 반영해 상승한 상황이라면 실제 수요 감소가 나타나기 전에도 투자자들의 전망 변화만으로 주가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직접적인 위험은 반도체주에 집중된 빚투(빚내서 투자)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국내 증권사의 신용거래융자 잔액 33조4000억원 중 반도체 관련 종목은 10조4000억원으로 전체의 31.1%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만 9조2000억원이 몰렸다.
주가가 추가로 급락하면 담보 부족으로 반대매매가 발생할 수 있다.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하락세를 더욱 키울 수 있다. 다만 거래가 활발한 대형주인 만큼 증권사가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게 NICE신용평가의 판단이다.
반대매매에 따른 위험은 빚을 낸 투자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주가 하락이 추가 매도를 부르고 다시 주가를 떨어뜨리면 신용융자를 이용하지 않은 투자자도 영향을 받는다. 시장 불안이 커져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을 줄이는 움직임까지 겹치면 매도 압력이 확대될 수 있다. 다만 신용융자 잔액 전체가 동시에 반대매매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 매도 규모는 담보비율과 주가 하락 폭 등에 따라 달라진다.
AI 투자 축소 땐 기업금융도 충격…대출·회사채 부실 경계
주식시장 밖에서는 데이터센터 자금조달이 주요 위험 경로로 꼽힌다. AI 수요 확대를 기대하고 추진한 데이터센터는 임대수익 등을 바탕으로 대출금을 갚는다. 그러나 AI 투자가 둔화하고 실제 수요나 임대수익이 예상에 미치지 못하면 사업자의 상환 능력이 악화할 수 있다. 관련 대출채권을 보유한 금융회사에도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회사채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AI 관련 기업이 대규모 설비투자를 위해 빌린 돈에 비해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하면 신용위험이 커지고 채권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 기업의 신규 자금조달 비용도 높아져 투자와 수익성이 추가로 악화하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융회사와 펀드들이 손실을 줄이거나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보유자산을 동시에 팔면 충격이 다른 시장으로 번질 수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 금융은 사업자와 대출기관만의 거래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별도 투자회사가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장기 임대계약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한 뒤 대출채권을 펀드나 기관투자자에게 넘기는 방식도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은행이 투자회사와 펀드 양쪽에 자금을 공급하면 사업 부진의 영향이 여러 금융기관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실제 손실 여부는 임대계약의 안정성과 대출 조건, 금융회사별 투자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AI 관련 기업과 데이터센터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투자·대출 규모와 특정 산업에 대한 위험 집중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주식과 채권, 대출시장의 충격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금융회사들이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