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슬램덩크' 만든 회사까지…'보수적' 일본마저 AI 손 잡았다

이정현 기자, 유효송 기자
2026.03.12 07:00

[MT리포트]웹소설·웹툰 AI 딜레마 (下)

[편집자주] "들키면 망한다"는 공포에 웹소설·웹툰 업계가 AI 활용을 금기시 하지만 숨겨진 반전이 있다. 일부 독자들의 매서운 별점 테러와 달리 '재미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속마음이 공존한다. 실제 AI의 도움을 받아 대박을 터뜨린 일본의 사례는 '다가온 미래'를 보여준다. AI는 창작의 고통을 덜어줄 '슈퍼 어시스턴트'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정부와 업계는 상생 비책을 준비중이다.
보수적인 日마저..."생성형 AI 쓴 만화, 랭킹 1위 대박났다"
생성형 AI 받아들이는 일본 콘텐츠 업계/그래픽=이지혜

콘텐츠 강국인 일본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러 작가가 모여 일일이 손으로 제작하던 과거와 달리 생성형 AI를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11일 IT(정보기술)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본 최대 디지털 만화 플랫폼 중 하나인 코믹 시모아에서 '아내요, 나의 연인이 되어주지 않겠습니까?'가 종합 랭킹 1위를 차지했다. 이 만화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들어졌다.

해당 만화가 1위를 차지하자 일본 콘텐츠 업계 일각에서는 정당성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유명 만화 편집자들이 이제 제작 방식보다 만화의 내용이 더 중요해졌다는 의견을 내며 일단락됐다. 이들은 앞으로 생성형 AI로 만든 만화가 더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콘텐츠 업계에서는 만화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도 생성형 AI를 활용한다. 지난해 3월 일본 지상파 방송사 MBS는 애니메이션 '트윈스 히나히마'를 방영했다. 이 애니메이션은 중소 제작사에서 95% 이상을 생성형 AI로 제작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생성형 AI가 고질적인 노동 환경 문제를 개선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제작 환경은 2024년 유엔 인권 실태 보고서에서 저임금, 장시간 작업 등이 지적될 정도로 열악하다. 제작사들은 생성형 AI를 창작 보조 도구로 활용하면 젊은 인구 감소와 노동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원피스',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 히트작을 제작한 토에이 애니메이션도 지난해 생성형 AI 기술 전략을 발표했다. 토에이는 일본 AI 스타트업 프리퍼드 네트웍스에 대규모로 투자해 스토리보딩, 채색, 배경 등 작업에서 효율성과 품질을 향상해 나갈 계획이다. 프리퍼드 네트웍스는 일본 최대 출판사인 고단샤로부터도 투자받았다.

한편 일본 콘텐츠 업계는 만화 불법 유통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생성형 AI를 활용한다. 현재 일본 정부 차원에서 불법 유통 사이트를 자동 추적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또 번역 속도가 느려 불법 유통 만화가 늘어나는 것으로 판단해 생성형 AI 번역 인재도 양성할 계획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가장 보수적일 것 같았던 일본도 콘텐츠 제작에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라며 "이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고 2023년 만화 아톰의 작가 데즈카 오사무의 '블랙잭'을 생성형 AI로 되살리는 등 지속적인 실험과 노력이 있어왔다. 국내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이런 실험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I 학습과 저작권 보호 균형점 찾기…정부 'K-콘텐츠 AI 생태계' 구축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AI 학습·평가 목적의 저작물 활용 및 유통 생태계 활성화' 계획/그래픽=이지혜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AI를 '슈퍼 어시스턴트'로 산업 전반에 적극 도입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도 관련 제도 정비에 착수했다. AI 학습을 위한 저작물 활용을 활성화하되 창작자 권리 보호와의 균형을 제도적으로 설계하겠다는 방침이다.

11일 정부와 IT(정보기술)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창작자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저작물의 AI 활용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법·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대규모 데이터 확보가 AI 기술 고도화의 핵심인 만큼 콘텐츠 분야에서 창작물과 예측 가능한 AI 활용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생성형 인공지능의 저작물 학습에 대한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안내서'(안내서)를 발간했다. 공정이용은 특정한 경우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도 저작물을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성형 AI가 저작물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규정 적용 여부를 판단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기본 기준과 고려 사항을 정리한 것이다.

아울러 AI 기술과 콘텐츠 산업의 동반 성장을 목표로 저작권법 개정을 포함한 포괄적인 제도 정비에 나설 계획이다. 뉴스·도서·음악 등 거래시장이 형성된 분야는 합리적 거래를 지원하면서 '학습 금지 표시제도(옵트아웃)'를 활성화해 창작자의 거부권을 보장한다는 구상이다.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았거나 권리자가 불명확한 저작물은 적법한 접근을 전제로 AI 학습을 허용하되, 향후 수익공유 체계를 마련해 새로운 거래 질서를 구축한다.

업계에서는 이미 AI로 '직무 재편'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실효성 있는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웹툰 업계 관계자는 "반복적 채색이나 배경 제작 등 단순 공정은 AI가 맡고, 인간은 연출 기획과 스토리 설계에 집중하는 식으로 직무가 재편될 수 있다"며 "앞으로 이같은 현상이 보편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박성범 넷마블 AI미디어개발팀장은 지난 2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AI 기반 콘텐츠 진흥을 위한 법적 개선과제 토론회'에서 "IP의 AI 학습 활용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 체계와 보호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창작 활동의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해외에서도 일찌감치 법 손질을 마쳤다. AI 모델이 고품질 콘텐츠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텍스트·데이터 마이닝 과정에서 저작권 책임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TDM 면책' 제도를 도입하거나 옵트아웃(학습 거부 의사표시)제도 도입, 훈련 데이터 요약 공개 등 투명성 원칙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싱가포르는 한 발 더 나아가 영리적 목적에 관계없이 TDM을 허용하는 포괄적 면책규정을 도입·시행 중이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부처에 "AI 학습 시 사전 동의를 원하는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기업이 학습 목적으로 법적 불확실성 없이 저작물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달라"며 "AI 학습·평가 목적의 저작권 이용허락과 양도에 대한 표준계약서를 고시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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