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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안에 국가 간 분쟁 과정에서 다른 나라의 위성을 물리적으로 손상시키거나 무력화하는 일이 벌어질까."
사회자가 던진 돌발 질문에 한국·캐나다·호주·일본 4개국 우주 안보 전문가 가운데 3명이 'O'를 택했다. 사회자는 "예상보다 훨씬 암울한 답변"이라고 말했다.
수천㎞ 상공에서 벌어지는 국가 간 경쟁이 이제는 지상의 안보를 넘어 우주 공간의 충돌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위성을 직접 파괴하지 않고도 GPS를 교란하거나 사이버 공격으로 기능을 마비시키는 '보이지 않는 공격'이 이미 현실화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우주에서의 경쟁이 협력보다 빠르게 격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30일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한국과학기술한림원(KAST)과 함께 '2026 STEPI 인텔리전스 다이얼로그'를 개최했다. 이날 마지막 세션에서는 '신뢰의 궤도: 아시아·태평양 우주안보 협력을 위한 핵심·신흥기술(CETs) 가치 활용'을 주제로 논의가 이어졌다.
토론은 안형준 STEPI 연구위원이 좌장을 맡고, 엄태연 캐나다 아시아태평양재단(APFC) 연구원, 라제스와리 필라이 라자고팔란 호주 전략정책연구소(ASPI) 박사, 세키네 호즈마 일본 미쓰비시종합연구소(MRI) 박사, 오일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실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안 연구위원은 "우주의 군사적 중요성이 빠르게 커지면서 우주안보는 더 이상 소수 강대국만의 의제가 아니라 모든 국가가 마주한 현실적인 과제가 됐다"며 "우주안보라고 하면 흔히 우주전쟁을 떠올리지만, GPS(위성항법시스템) 교란과 사이버 공격, 궤도 혼잡 등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엄태연 캐나다 APFC 연구원은 "캐나다가 그동안 우주 감시를 비롯한 국가안보 분야에서 미국에 상당 부분 의존해 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과의 무역분쟁을 겪으면서 이런 의존도가 캐나다의 취약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고 했다.
엄 연구원은 "실제 캐나다는 미국과 공동으로 우주 감시를 수행하는 체계에 참여하고 있지만, 캐나다군이 관련 정보에 충분히 접근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캐나다는 자체적인 국가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우주산업을 활성화하고 국내 우주 관련 시설을 확충해 미국 등 동맹국의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우주 상황을 감시하고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라자고팔란 ASPI 박사는 중국의 빠른 우주 역량 확대를 지적했다. 그는 미국 랜드연구소 분석을 인용해 "지난 8년간 중국의 ISR(정보·감시·정찰) 위성은 6배, 상용위성은 17배 늘었다"며 "이는 장거리 정밀타격 능력이 강화됐다는 뜻이고, 인도·태평양의 안보 지형이 악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위성 급유·수리 등 궤도상 서비스 기술의 이중 용도 문제도 지적했다. 위성 수명을 연장하는 유용한 기술이 의도에 따라서는 무기로 전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자고팔란 박사는 "한 국가가 정당성을 내세워 대(對)우주 공격 능력을 키우면 다른 나라도 따라가게 되고, 결국 전체 우주안보가 나빠진다"며 "지난 10년간 주요국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지 못해 효과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메커니즘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주 공간에서 경쟁이 격화하는 속도를 협력의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면 고조되는 긴장은 결국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아태 국가들이 정보와 신뢰를 공유하는 견고한 협력 틀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키네 MRI 박사는 일본의 가장 큰 변화로 '안보의 정의'를 꼽았다. 과거에는 우주를 별도의 영역으로 논의했다면 이제는 사회 인프라의 일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30년 전 커리어를 시작할 때만 해도 위성 하나를 개발·발사하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이제는 수천 기의 위성이 운용되고 있다"며 "민간이냐 군이냐로 단순하게 나눌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위성 자체를 어떻게 지키느냐가 아니라 평시든 전시든 서비스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라며 "공격이나 기술적 결함에 대비한 백업 옵션, 즉 '플랜B'와 사회적 회복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간 기업의 역할에도 주목했다. 세키네 박사는 "앞으로 피지컬 AI가 위성 운용과 달 궤도 서비스 등에 활용되면서 감지를 넘어 행동까지 하게 될 것"이라며 "AI뿐 아니라 양자, 핵융합도 주요 기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일본의 상황은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며 한일 기술협력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오일석 INSS 실장은 △우주 서비스·기능의 지속적 유지 △우주 자산 보호 △우주산업 생태계 경쟁력 확보 △우주 시스템에 대한 형평한 접근 보장 등 네 가지 축으로 우주안보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발사체·위성 개발과 함께 필요한 과제로 '정보 공유'를 꼽았다. 오 실장은 "국가정보원의 N2SF(국가망 보안체계)에 따라 정보를 기밀·민감·공개로 분류하는데, 분류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판단을 주저하면서 우주산업에 필요한 데이터 상당수가 기밀에 묶여 있다"며 "민간과 공유할 수 있는 정보 등급을 더욱 세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도 주문했다. 오 실장은 연구개발 실패 시 개발자와 기관의 민·형사상 책임을 덜어주는 면책 규정 도입, 다년간 진행되는 위성 조달사업이 마지막 단계에서 틀어지더라도 지체상금이나 계약 파기를 피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예산을 지급하는 구조, 연구자 중심의 패널이 손해배상·형사책임 여부를 조정하는 장치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