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기, 부항컵 사려다 흠칫…"소독약까지 올랐다" 의료계도 '사재기'

박정렬 기자
2026.04.01 15:49
중동전쟁에 영향 받는 의료 분야 품목/그래픽=임종철

#. 한의사 김모씨는 최근 일회용 주사기·부항컵을 구매하려다 흠칫 놀랐다.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관련 제품 대부분이 '품절'이었기 때문이다. 해당 홈페이지에는 '원유 수급 차질로 공급 지연과 원가 상승이 지속되고 있다. 비닐류, 파우치, 부항컵 등이 일시 품절되거나 출고 지연될 수 있다'는 안내문이 올라와 있다. 김씨는 "다른 구매 사이트도 부항컵은 한 회사 제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품절"이라고 혀를 찼다.

#. 수도권의 종합병원장 이모씨는 이번 달 붕대·밴드 등 소모품 주문 수량을 대폭 늘릴 예정이다. 중동전쟁에 따른 환율 상승으로 수입 제품의 단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당장 수급에 문제는 없지만 공급처에서 가격을 올린다고 통보해 선제 대응할 예정"이라 말했다.

중동전쟁의 여파가 의료 현장을 덮치고 있다. 플라스틱·합성수지 원료인 나프타 수급 불안과 환율 상승으로 주사기 등 의료 소모품 비용이 오르면서 종량제 봉투처럼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일 한의학 의료 소모품 구매 온라인 사이트에 공급 지연과 단가 인상 등을 알리는 안내문이 올라와있다./사진=홈페이지 캡처

1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수액백과 의약품 용기, 포장재(비닐) 등이 중동전쟁으로 수급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다. 약을 만들어도 이를 담아 팔기 어려워지고 있다. 머니투데이 취재 결과 최소 3개 이상 업체, 26개 품목이 현재 의약품 포장재 재고가 없거나 1개월 안팎에 그친다. 이 중에는 투석 시 사용하는 전문의약품도 있어 상황이 심각하다.

일부 업체는 중동전쟁에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수출길이 막혔다며 이중고를 호소한다. 매출 타격은 물론 현지 입찰에 참여하지 못해 자격 제한과 같은 페널티를 물게 될 처지다. 의약품 수출 업체 관계자는 "선적 지연이 지속되면 보관료 등 매몰 비용이 커질뿐더러 의약품 제형 특성상 폐기될 가능성도 있다"고 걱정했다.

의료기기 업계는 생산 중단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의료기기 유통업체 관계자는 "생산 품목이 적은 일부 제조사는 원료나 재료 공급 우선순위에서 밀려 공장 가동을 아예 중단했다"고 말했다.

수요 조절을 위해 공급 단가를 10~20% 올리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원유를 재료로 하는 제품에는 과산화수소·에탄올같은 소독약처럼 없어서는 안 될 기본 제품이 많은데 이것까지 올랐다"며 "제품마다 수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병의원의 공급가를 당장 올리기도 어려워 손실을 온전히 떠안고는 있지만 이대로면 제조사는 물론 유통사도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31일 오후 서울 중구 T타워에서 열린 '중동전쟁 대응 보건의료 관계기관 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정부는 환자 안전을 위해 팔을 걷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원료 수급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한편 의약품·의료기기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필요시 제조소 추가와 포장재 변경 허가·신고를 신속 처리할 방침이다. 복지부는 지난달 6일부터 테스크포스(TF)를 가동해 의료기관·기업의 피해상황을 점검·수집하는 한편 대한의사협회·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주요 단체와 함께 공급망 불안을 극복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중동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원료 부족과 고환율 등의 영향으로 지금보다 저렴한 제품을 찾게 되고, 이에 따라 의료 질이 전반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며 "국민의 건강에 직결된 만큼 나프타 수급 시 의료 분야에 우선 투입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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