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결렬되면서 의료제품 수급난을 둘러싼 우려가 장기화하고 있다. 협상 결렬로 중동 정세 불확실성이 확대됨에 따라 주사기·수액제 포장재 등의 원료인 '나프타'의 공급망 불안정성이 가중될 수 있단 해석 때문이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날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결렬되면서 의료 현장에선 의료 소모품 수급난이 길어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중동 사태 여파로 이미 차질을 빚고 있는 나프타 공급 문제가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돼서다.
이날 오후 일부 의료 용품 온라인 쇼핑몰에선 일회용 주사기 등 나프타 관련 품목이 여전히 품절 상태다. 한 온라인 쇼핑몰은 단가 인상이 적용된 의료 용품 제조사 목록을 공개하며 "원활한 진료 운영을 위해 필요 품목은 가급적 사전에 확보하거나 재고 운영을 여유 있게 할 것을 권장한다"고 공지했다.
정부는 민관 협의를 통해 중동 정세 대응에 나섰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관계 부처 및 12개 보건의약단체와 '의료제품 수급안정 협력 선언'에 합의하며 수액 세트·주사기·혈액투석제통 등 6개 의약품·의료기기를 집중 관리 품목으로 선정했다. 지난 11일엔 중동전쟁에 따른 고유가·고물가 부담이 커질 취약계층 지원 강화를 위해 올해 제1회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총 3461억원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당초 국회에 제출한 3263억원보다 198억원 증액된 예산이다.
의료계도 자체 대응 수준을 높였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즉시대응팀'을 운영, 최근 의료기관에 나프타 관련 품목 재고 현황 조사 양식을 발송했다. 현재 보유 품목을 향후 며칠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 병·의원별 예상 기간을 조사해 정부와 세부 대안을 논의하겠단 입장이다. 의협에 따르면 일부 소규모 의원의 나프타 관련 품목 재고량은 일주일에서 한 달 수준이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기자와 통화에서 "개인 의원은 앞으로 일주일~한 달 사이 공급이 제대로 안 되면 진료 운영에 실질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구체적인 재고 현황을 파악한 뒤 필요하다면 적정 재고 이상을 보유한 의료기관은 용품 구입을 제한하는 등 협회 차원의 캠페인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병협)도 '의료제품 수급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는 수액제·주사기 등 14개 필수 관리 품목을 선정, 회원 병원을 대상으로 일평균 사용량과 재고량을 매일 점검할 계획이다. 재고 부족이 예상될 경우 유관 기관과 협력해 세부적인 공급 안정화 대책을 마련한다.
다만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군사적 압박 수위를 더 높일 수 있단 분석이 나오는 만큼 당분간 원료 공급의 불안정성이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현장에서 우려하는 건 불안 심리의 확산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대형병원은 보통 2~3개월분의 재고가 있지만 작은 의원급이나 약국 등은 공간 문제 등으로 굳이 수개월분의 재고를 쌓아두진 않는다"며 "종전 협상 결렬로 의료 현장 불안 심리가 커지면 실제 수급 문제와 무관하게 사재기 현상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