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티스가 우리나라에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RLT·이하 방사성의약품) 생산시설을 짓는다. 글로벌 제약사의 국내 공장 건설 결정은 한국 바이오 생태계 발전과 환자 치료 안전성을 동시에 향상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보건복지부는 노바티스와 21일 서울 용산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한국 내 방사성의약품 공장을 짓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노바티스는 방사성 의약품 제조시설 건립과 함께 첨단 콜드체인 물류망 구축, 투여 가능 병원 확대(10개소→30개소), 신약 개발과 전문 인력 양성 등에 약 1400억원을 투자하고, 복지부는 바이오산업 생태계 기반 조성과 환자 치료 접근성 개선을 위해 노바티스와 전략적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
방사성의약품은 암세포에 결합하는 '리간드'와 치료용 방사선을 방출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결합한 치료제다. 리간드가 암세포에만 나타나는 표적 단백질에 붙고, 방사성 동위원소가 방사선(α선·β선)을 방출해 암세포의 DNA를 절단·사멸시키는 방식이다. 타깃 암세포만 공격해 주변 조직 손상이 적고, 효과는 강력해서 일명 '방사선 미사일 치료'라고도 불린다.
노바티스의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는 이런 방사성의약품의 시작점으로 꼽힌다. 임상시험 결과 전이성 전립선암에서 사망위험을 60% 감소시키고 전체 생존 기간을 기존 표준치료보다 4개월 연장하는 등 강력한 효과를 입증했다. 2022년 미국 허가 후 출시 1년 만에 9억8000만달러(약 1조45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도 3조원에 가까운 글로벌 매출을 기록하며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입지를 다졌다.
노바티스의 국내 생산 결정은 SK바이오팜, 퓨쳐켐, 듀켐바이오, 셀비온 등 국내 진단용·치료용 방사성의약품 개발 기업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전무는 "글로벌제약사가 소재·부품·장비 시설이 아닌 의약품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고용창출, 협력업체 육성은 물론 선도기업인 노바티스의 '경험'을 우리나라 전문인력이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방사성의약품은 시간이 지나면 약효가 감소하는 특성(반감기)이 있어 분해되기 전 생산→배송→투여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 환자들은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 해외 생산시설에서 수입해 치료제를 사용해왔는데, 향후 국내 생산이 시작되면 공급망이 강화돼 보다 안정적인 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디스 러브 노바티스 APMA(아태·중동·아프리카 지역) 총괄 사장은 협약식에서 "한국의 방사성의약품 생태계 발전을 촉진하고 더 많은 환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 보건의료 분야 관계자들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글로벌 제약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은 이번이 올해 들어 3번째다. 지난 3월 스위스 로슈에 5년간 7100억 규모의 투자를 약속받은 데 이어 같은 달 미국 일라이릴리와 5억 달러(약 7477억원)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임상시험 확대와 연구환경 조성,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 활성화 등 협력 범위도 넓다. 오 전무는 "복지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규제기관이면서도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기도 하다"며 "업계와 소통하며 제약·바이오 생태계 조성과 지원에 나서는 모습은 굉장히 고무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