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5.18 뒤 7년만 민주화…천안문 30여년에도 中 민주화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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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8 14:55

77년 이후 韓 민주화 취재 브래들리 마틴 기자, 한중 비교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은 9일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을 기록한 영상을 공개했다. 이날 처음으로 공개된 영상은 80년 5월20일부터 6월1일까지 국군통합병원과 적십자병원 환자 치료 상황, 전남도청 기자회견 등 광주 일대와 근교를 촬영한 기록이다. 사진은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의 모습.(5.18민주화운동기록관 상영 영상 갈무리)2018.5.9/뉴스1 © News1 남성진 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한국은 5.18 민주화운동을 동력으로 7년 뒤 대통령 직선제 도입이란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중국에선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30여년이 흘렀지만 관련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1977년 이후 아시아 특파원으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다뤘던 브래들리 마틴 기자가 한중의 차이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아시아타임스 기고문에서 진단했다. 그는 1980년에는 '볼티모어 선' 기자로서 5.18 광주항쟁을 취재하기도 했다.

◇ 후견인 문화 =마틴은 우선, 미국의 존재에 주목했다.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1987년 전두환 군사정권은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중국에는 이 같은 후견인(benefactor)이 없었다면서 당시 미국의 입장을 소개했다.

개스틴 시거 당시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987년 2월, 미국은 전두환이 평화롭게 물러나고, 민주적인 선거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길 기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1989년 6월 6일 촬영된 이 사진에는 인민해방군(PLA) 전차와 군인들이 베이징 톈안먼 광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 AFP=뉴스1

또한 같은 해 6월, 시위가 격화됐을 때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은 전두환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귀국에 대한 미국의 공언"은 "장기적 안정"을 위한 건전한 민주적 제도를 포함해야 한다며 정권을 압박했다.

미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는 "권위주의 정권은 권력 유지를 위해 진압에 나선다면 자신들이 물러나게 될 수 있음을 알았고, 반대파(야권과 시민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며 "그래서 집권 세력은 한계를 느꼈고, 반면 반대파는 고무됐다"고 설명했다.

◇ 서구 민주주의 경험 =마틴은 한중 간 차이로 한국은 미국 등으로부터 민주주의 이상에 관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다. 반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은 중국에서 부르주아적 행동과 사고를 도려내는 데에서 많은 성공을 거뒀다고 진단했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NSC) 특별 보좌관이었던 제임스 켈리는 마오쩌둥의 후계자격이자 톈안먼 사태 당시 집권자인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봤고, 좋든 나쁘든, 톈안먼에 모여든 청년들을 그들의 후계자들로 봤다"고 진단했다.

서울 주재 미 국무부 해외근무요원(FSO)이었던 린 터크는 전두환 정권은 시민 진압에 전투경찰을 활용했는데 시위대 규모가 이를 압도했고, 광주에 투입됐던 특전사는 시민 통제에 다시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전했다. 터크는 "중국의 군대가 소집됐을 때 이런 식의 거리낌을 가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1987년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쓰러져 숨진 이한열 열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 2점이 공개됐다.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로 한국을 찾은 네이션 벤은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이한열기념사업회에 이 사진을 제공했다. 사진은 1987년 6월 9일 서울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경영학과 2학년생이었던 이한열 열사(현수막뒤 영문자로 ‘연세’라고 적힌 티셔츠와 파란마스크를 착용)가 피격되기 직전의 모습. (네이션 벤 제공) 2017.5.20/뉴스1

◇ 대통령 선거 =마틴은 선거 제도도 큰 차이였다고 말했다. 터크는 "한국과 달리 톈안먼 사태 이후에는 촉발사건이 없었다"며 "전두환은 임기 후 물러나기로 했기 때문에 후속 절차가 있었다. 이로 인해 학생들과 시민들 다수는 선거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터크는 이 같은 요구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이것이 박정희 정권이 그 권리를 빼앗기 전의 경험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1971년 유신체제가 들어서기 전까지 한국에선 대선이 치러졌다"고 지적한 뒤 중국은 선거를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민주화 운동의 학생 지도자였던 왕단(Wang Dan, 王丹)은 지난해 뉴욕타임스(NYT)에 "우리에겐 민주주의적 변혁을 촉진시킬 지지와 경험이 결여돼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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