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파 병원에 갔는데 체온을 체크하더니 100달러(약 13만원)를 내라고 했다", "두통이 심해서 병원 응급실에서 링거 맞고,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고 돌아왔는데 며칠 뒤 1만2000달러(1550만원)가 청구됐다",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고 1박2일 만에 퇴원했는데 병원비 청구서에 5만달러(6500만원)가 찍혀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미국의 의료비에 얽힌 사연들이 심심찮게 전해진다. 전 국민이 국민건강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한 한국에선 다소 믿기 어려운 내용 들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 같은 에피소드는 허구가 아닌 실제 상황이다.
미국에선 몸이 아파도 병원을 가지 못하고 참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고정 수입이 없는 노인들은 값비싼 병원비 부담 때문에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리서치 전문업체 갤럽과 노인관리 비영리단체인 웨스트 헬스의 공동조사 결과를 인용해 65세 이상 상당수 노인들이 중요한 의료 서비스를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응답자의 12%는 "자신이나 가족이 아플 때 비용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 노인들의 11%는 현금을 아끼기 위해 처방받은 약을 제때 먹지 않고 거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미국인 상당수가 의료비를 충당하려고 필수 지출을 줄였다. 응답자의 9%는 식비를 아꼈고, 6%는 공공요금 지출을 줄였다. 소비를 가장 많이 줄인 품목은 의류(19%)였다.
미국의 54세 이상 인구는 2022년 현재 5200만명에서 2034년 7700만명으로 증가할 전망이어서 의료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봤다.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초기 바이러스의 기세가 강력했을 당시 수많은 미국인들이 병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앓다가 사망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0년 4월 기준 미국 전역 응급실 방문건수가 전년 같은 달 대비 42% 감소했다는 통계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일부러 진료를 미루는 환자들이 많아 응급실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2020년 3월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 병원에 입원해 62일간 코로나19 치료를 받은 70세 남성에게 112만2501달러(14억4700만원)가 청구됐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미국인들의 '병원비 공포'가 극에 달했다.
실제 미국의 의료비는 전 세계 가장 비싼 수준이다. 미 예일대 의대와 바사 칼리지 연구진이 2021년 9월~2022년 3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소득이 높은 22개 국가의 의료비(2019년 기준)를 분석했더니 미국의 국민 1인당 의료비가 1만945달러(1401만원)로 가장 높았다. 스위스(1232만원), 노르웨이(983만원), 룩셈부르크(789만원), 덴마크(767만원), 아이슬란드(755만원) 등이 미국 다음으로 의료비가 비싼 국가들이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조사대상 22개국 가운데 국민 1인당 의료비가 333만원으로 가장 저렴했다. 이는 미국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한국 외에는 스페인(346만원), 이탈리아(373만원), 뉴질랜드(496만원), 영국(551만원), 일본(567만원) 등의 의료비 부담이 낮았다.
한국에서 거주 중인 한 미국 기업 주재원은 아이가 아파서 집 근처 소아과를 방문했다가 매우 특별한 의료서비스를 경험을 했다. 그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무섭다고 소리치는 아이를 달래려고 사탕을 주고, 태블릿PC로 영상을 틀어주기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청구할까 의심했는데 서비스 비용은 전혀 없었다"며 "미국에선 많은 병원들이 감정노동 등 황당한 명목을 붙여 의료비를 과잉 청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