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이하 현지시간)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무역합의 이전 수준인 25%로 다시 인상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을 두고 관세 인하 조건으로 합의했던 대미(對美) 투자가 늦어지는 것을 의식한 압박용 카드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관세 인상 시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점으로 미뤄볼 때 실제로 관세를 인상하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상대를 최대한 압박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방식, 이른바 '거래의 기술'(트럼프 대통령의 저서 제목)로 투자금을 빨리 집행하라는 신호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새해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 시도와 캐나다-중국 무역 협상 등과 맞물려 또 다시 관세를 무기로 꺼내든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에도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을 통해 "자동차, 목재, 제약을 포함한 모든 상호관세에 대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밝힌 것은 이날 오후 4시57분, 한국시간으로 27일 아침 6시57분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SNS 게시글 발표가 나오기 전에도 게시글이 올라온 뒤에도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전·사후 통보나 관세 인상 시점을 비롯해 세부 내용에 대한 설명이 현재까지 없는 상황이다.
외교통상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구체적인 시점 없는 한국 관세 25% 복원 발표를 두고 이례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특정국에 대한 관세 인상이나 추가 부과를 예고할 때 적용 시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달 초 그린란드 합병 문제에 반대한 덴마크·영국·프랑스 등 유럽 8개국에 관세를 추가하겠다고 밝혔을 때도 관세 추가 시점으로 오는 2월1일, 6월1일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한미 양국이 지난해 11월13일 무역합의 내용을 정리해 발표한 공동 팩트시트에 따르면 한국이 3500억달러(약 505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하는 조건으로 미국은 대미투자와 관련한 특별법이 한국 국회에 제출되면 법안 제출된 달의 1일자로 한국산 자동차 등을 포함한 품목 관세와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소급해 인하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와 관련, 지난해 11월26일 국회에 대미투자특별법을 발의했고 미국은 지난해 12월4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5%로 소급해 인하했다.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서 심사 중인 대미투자특별법은 이날로 법안이 발의된 지 꼭 2개월이 됐다.
한 외교전문가는 "무역 합의에 대미투자특별법 제정 시한이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관세 인하 조건으로 약속한 대미투자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압박 성격의 '관세 복원 일방발표'를 내놓은 이유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 정부에서 올해 상반기 대미투자가 지연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나온 것도 트럼프 행정부의 우려를 자극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구윤철 재정경제부 장관은 블룸버그 통신과 최근 인터뷰에서 투자 프로젝트 선정에 시간이 오래 걸려 올해 상반기 투자 집행이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원화 가치의 급격한 약세가 한국 경제 펀더멘털과 맞지 않는다고 구두개입성 언급을 한 것을 두고도 원화 약세로 한국이 연간 200억 상한의 대미투자를 어려워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유럽연합(EU)이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합병 추진에 반발하면서 지난해 미국과 타결한 무역합의 승인을 보류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본보기로 삼아 외교적 효과를 노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U와 한국 모두 미국의 중요 동맹이지만 다국가연합인 EU에 비해 한국이 상대적으로 협상력 측면에서 다루기 수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국회를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서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논란이 된 쿠팡에 대한 제재 움직임과 디지털 플랫폼 규제 추진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합의 이후 한국 국회가 제정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국회에서 발의된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대해 줄곧 불만을 제기해왔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23일 미국을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를 만나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두고 미국기업에 대한 차별 우려를 표했다.
외교통상가 한 인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복원 카드를 꺼내든 것은 여러 사안을 감안한 다중포석일 수 있다"며 "이유가 무엇이든 한국 정부 입장에선 추가 부담을 최소화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고 미국이 공식적으로든 물밑으로든 어떤 추가 요구를 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