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슬람 혁명 직전인 1970년대 테헤란의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출근하는 젊은 여성들, 나팔바지를 입고 공원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는 연인들, 수영장에서 비키니를 입은 사람들의 사진 말이다. 마치 파리나 밀라노, 로스앤젤레스처럼 보인다. 하지만 1979년에 혁명이 일어났고 이제 테헤란은 마치 이전 세기처럼 보인다.
때때로 나는 세상 전체가 그렇게 됐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을 거슬러 간 것처럼. 오늘날 세속화된 시대에 번성하는 종교 운동은 현대 문화의 상당 부분에 반대하는 전통주의 운동들이다. 혁명 이후 이란의 시아파 이슬람뿐만 아니라 정통 유대교와 보수적 가톨릭도 마찬가지다. 젊은 미국인들은 동방정교회로 몰려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가 현대화되면서 더 민주화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난 25년간 우리는 권위주의 독재로의 회귀를 목격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는 마치 16세기 유럽의 군주처럼 행동하며 대통령직을 자신의 개인적인 영지로 만들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계몽주의를 거부하는 동방정교회 소속의 반자유주의 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과 같은 반동적 사상가들의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국주의적 정복을 정당화한다.
소셜미디어에 접속하면 남편과 다섯 아이를 위해 쿠키를 굽는 '전통주의 아내'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그의 추종자들은 백신이라는 현대의 신종 발명품을 신뢰하지 않는다. 1999년에는 세계 정세가 유럽연합(EU)이나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간 기구에 의해 주도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중국과 미국, 러시아와 유럽 간의 19세기식 강대국 경쟁 시대로 회귀했다. 트럼프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은 심지어 먼로 독트린을 부활시켰다.
우리는 한때 현대성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더 큰 자율성과 평등, 세속주의, 더 강한 개인의 권리, 문화적 개방성,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향해서 말이다. 진보는 모든 영역에서 개인의 선택권을 확장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과학과 이성이 번성하고 미신과 음모론은 사라질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어제의 미래상이었다. 전 세계 수십억의 사람들이 역사가 향하는 방향을 보고 소리쳤다. "멈춰!" 그들은 그 미래가 너무나 영적으로 공허하고, 너무 외롭고, 너무 기술적이며, 너무 오염되었고, 너무 혼란스럽고, 너무 일관성이 없다고 본다. 구체적인 불만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은 상실감과 더 단순하고, 더 행복하며, 더 지속가능한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에 이끌리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구호의 탁월한 점 하나는 바로 그 향수와 상실감을 자극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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