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유화적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중국은 미국과의 장기 경쟁에 대비한 시간 벌기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라이언 하스 브루킹스연구소 존 L. 손튼 중국센터소장은 최근 보고서 '왜 베이징은 트럼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가 (Why Beijing isn't taking the bait with Trump)'에서 "중국 지도부는 미국과의 전략경쟁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트럼프와 관계에서 획기적인 돌파구를 만드는 것보다 장기 경쟁에 대비해 중국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스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접근법이 과거 미국 행정부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정치체제나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중국을 미국과 경쟁하는 또 다른 강대국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왔으며 시 주석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존경과 우호적인 표현을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기술과 대만 문제에서도 비교적 유화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다고 봤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수출 제한을 일부 완화하는 한편 대만 문제에서는 긴장 고조를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또 미군이 대만을 위해 전쟁을 벌이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향후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에 대해서도 시진핑 주석과 협의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중국 주변에 배치됐던 미 항공모함과 미사일 방어시스템 등의 일부 전략자산이 중동으로 이동하면서 대중국 압박도 완화됐다.
하지만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우호적인 접근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국빈방문에서 시 주석을 공개적으로 높이 평가했지만, 중국 측은 대규모 상업계약 체결식이나 관계 개선을 상징할 만한 성과를 부각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G2' 구상에도 호응하지 않았고 양국 관계를 '건설적 전략 안정'으로 규정하는 중국 측 표현만을 강조했다.
경제 분야의 협력에서도 중국의 대응은 제한적이었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 방중 당시 미국 보잉 항공기 200대 구매 의사를 밝혔지만, 당초 거론된 500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농산물 구매도 대폭 축소됐다. 또한 엔비디아의 H200 반도체의 수출을 허용했지만 중국은 오히려 거부했고 최근에야 제한된 수입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핵심적인 희토류 문제에서도 미국 측에서 중국이 양국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할 정도로 중국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이처럼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호의적인 정책에 제한적으로 대응하는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미국과의 경쟁에 대해 중국 지도부의 자신감이 이전보다 커졌다는 점이다. 중국은 2025년 미중 무역갈등을 견뎌냈고, 에너지와 공급망을 다변화하면서 외부 충격에 대한 대응능력이 높아졌다고 판단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관계 안정을 위해 미국에 필요 이상의 양보를 할 이유는 크지 않다는 것이 하스 소장의 생각이다.
둘째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정책을 장기적인 전략 변화로 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체제와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미국과의 전략 경쟁 자체가 사라졌다고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9년 이후 차기 미국 행정부가 다시 대중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도 중국의 계산에 포함돼 있다는 설명이다.
셋째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보다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 비중을 둔다는 측면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관계를 강조하지만, 실제 미국 정부의 인공지능(AI) 전략과 첨단기술 정책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국 입장에선 대통령의 유화적 언급과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기술·공급망 정책 사이의 간극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넷째 시 주석이 중국 국내 문제에 보다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이유도 있다. 시 주석은 현재 경기둔화와 청년실업, 지방정부 부채 등에 직면한 가운데 4선 연임을 위한 기반을 다져야 한다. 특히 2027년 중국 공산당 제21차 당대회를 앞두고 국내 현안과 지도부 재편 문제가 중요해지면서 시 주석은 대미 관계보다 국내 정치에 우선순위를 둘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향후 큰 타협이나 획기적인 관계 개선을 추구하기보다 갈등이 통제 가능한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산 제품 구매 확대나 일부 시장개방 등 제한적인 경제적 조치를 제시하는 대신 대만 문제와 추가 관세, 첨단기술 규제 등에서 미국의 압박을 줄이려 할 수 있다는 전망도 이어졌다.
AI 안전이나 군비통제, 우크라이나와 중동 문제 등 글로벌 현안에서 양국이 공동 의제를 구축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낮게 평가했지만,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미중 군사당국 간 소통과 우발적 충돌 방지 장치 등 위기관리 분야에서는 제한적인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하스 소장은 "중국은 미국과의 대결을 원치 않지만, 획기적인 돌파구를 추구하지도 않는다"며 "중국은 미국과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보다 충돌을 관리하면서 향후 미국의 압박을 견딜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