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과 전셋값이 함께 오르면서 정부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면 세입자가 있는 주택의 거래가 쉽지 않다. 반대로 실거주 규제를 크게 풀면 갭투자 등 투기 수요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 이에 정부는 실거주 원칙은 유지하면서 거래 제약을 덜어주는 쪽을 택했다.
1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5월 실거주 유예를 확대하는 조치를 발표한 지 4개월 만에 다시 제도를 손질했다. 당초 올해 말까지로 설정한 유예 신청 기한을 내년 말까지 1년 연장하고 기존 임대차계약뿐 아니라 갱신계약도 유예 대상에 추가했다.
최근 주택시장에서는 매매와 전세 보증금이 모두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까지 서울 주택 매매가격은 전년 말보다 6.68%, 전셋값은 5.91% 올랐다. 전셋값은 올해 2월 0.35%에서 3월 0.46%, 4월 0.66%, 5월 0.91%로 상승 폭을 키웠다. 6월에는 1.08%까지 올랐고 7월에도 1.03% 상승했다. 8월에는 0.83%로 둔화했지만 상승세는 이어졌다.
전월세 시장의 불안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세입자가 있는 주택의 거래까지 제약되면 매매시장에서도 매물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세입자가 거주하는 집은 매수자가 바로 입주할 수 없다. 남은 임대차 기간이 길수록 자금 조달과 입주 시점을 맞추기도 어렵다. 토허구역의 실거주 요건이 거래 과정에서 추가적인 제약으로 작용하는 이유다.
정부는 세제 개편에 따른 주택 거래 여건 변화도 고려했다. 다주택자와 비거주 1주택자, 임대사업자 등의 보유 주택이 시장에 나오더라도 세입자가 있는 매물은 거래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세제 개편으로 매도 물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임대 중인 주택의 거래까지 막히면 실제 매물 공급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갱신계약까지 실거주 유예 대상을 넓히면서 꽉 막힌 거래 흐름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기존 제도에서는 갱신계약 기간이 유예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갱신한 기간까지 입주 유예를 인정하면서 임대차계약이 유지되는 동안에도 주택을 거래할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 김이탁 국토부 1차관은 "토지거래허가제의 실거주 원칙은 유지하면서 임대 중인 주택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보완하고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실거주 유예 확대로 세입자가 있는 주택 거래에도 다소 숨통을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거래가 실제 매매로 이어지기까지는 또 다른 걸림돌이 존재한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세입자 퇴거를 전제로 주택을 매수하면 대출금액이 1억원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임대사업자가 보유한 재건축 아파트도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등의 영향으로 매물이 시장에 다수 등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대시장에 미칠 영향도 살펴봐야 한다. 다주택자와 비거주 1주택자, 임대사업자가 매도에 나서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전월세 매물이 거듭 쪼그라들 수 있다. 남 연구원은 "임대사업자, 비거주주택자, 다주택자의 매도 물량이 집중된다면 전월세 매물 역시 동반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며 "전월세 가격 변동성이 한층 커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정책 일관성에 대한 지적도 흘러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규제라는 측면에서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지만 잦은 수정·보완은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정책 불신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84주 연속 상승하면서 문재인 정부 당시 기록한 역대 최장 기록(85주)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세제개편안 영향으로 강남3구 약세가 이어질 전망이지만, 실수요자들이 매매가 중·하위 지역으로 계속 유입되며 이들 지역의 강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부동산원이 17일 발표한 9월 둘째주(14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서울 매매가격지수는 0.16% 상승해 84주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만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3구가 동반 하락하면서 전주(0.20%) 대비 상승폭은 줄었다.
세제개편안 영향이 지속되며 강남3구는 2주째 동반 하락했다. 이 중 강남구(-0.36%)와 서초구(-0.26%)는 6주 연속 내림세다. 송파구도 낙폭을 키워 0.12% 하락했다. 강남구나 서초구로 갈아타기 하려는 송파구 아파트 보유자들이 뒤늦게 일부 매도 호가를 조정하는 움직임이 이번주 송파구 가격하락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부동산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반면 서울 외곽 매매가 중·하위권 지역은 강세를 이어갔다. 중랑구(0.51%), 도봉구(0.47%), 서대문구(0.47%), 성북구(0.43%) 등이다. 대출부담 증가와 세제 불확실성 등이 계속되면서 실수요가 가격 문턱이 이미 높아진 강남3구, 한강벨트 등 핵심지역 대신 인접 하위 지역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경기도는 0.18% 올라 전주(0.17%) 대비 상승폭이 소폭 늘었다. 특히 수원 영통구(0.61%), 안양 동안구(0.45%), 수원 권선구(0.42%) 등 경기 남부 주요 지역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경기 남부의 강세는 삼성전자 사내대출 등으로 인한 유동성 유입이 본격화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사내대출 기준에 맞춰 광교 신도시나 영통·매교 역세권 신축 아파트로 갈아타기 수요가 집중되는 모습이다. 출퇴근 권역인 용인 기흥구, 화성 동탄구도 각각 0.42%, 0.31% 오르는 등 반도체업 종사자 중심의 실수요 이동이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세제개편안 영향 속에서 서울 아파트 시장 내 지역별 온도 차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상대적으로 세제 부담이 큰 강남3구는 약세가, 개편안 영향으로 덜한 매매가 중·하위 지역은 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반도체 배후지역을 포함한 경기 남부 지역은 탄탄한 실수요를 바탕으로 거래 활기와 가격 오름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 연구원은 "세제개편안을 둘러싼 정책 불확실성이 여전한 데다 금리인상으로 인해 투자심리도 위축된 만큼 강남3구 지역의 거래 둔화 및 가격 약세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어 "서울 중하위 지역 및 경기도는 세제개편안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생애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2030세대 무주택자들의 대기수요도 두터운 편이라 가격 강세도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직장인 A씨는 최근 서울의 원룸형 다세대주택을 매물로 내놨다가 매도 계획을 접었다. 취득 당시 가격에 사겠다는 매수자가 나타나 임대사업자 지위와 남은 임대의무까지 포괄 승계하기로 했지만 감면받은 취득세와 가산액 등 3000만원이 넘는 금액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정부가 다주택자와 등록임대사업자의 세제 혜택을 줄여 매물을 유도하는 가운데 정작 의무임대기간이 남은 기존 사업자가 사업을 정리할 퇴로는 지나치게 좁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대사업자가 아닌 사람에게 주택을 무단 매각하면 과태료를 물 수 있고 다른 임대사업자에게 적법하게 넘겨도 취득 당시 감면받은 세금이 추징되기 때문이다.
실거주 주택과 임대 중인 다세대주택을 한 채씩 보유한 2주택자인 A씨는 향후 실거주 주택을 갈아타는 과정에서 주택 수에 따른 대출·세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판단해 임대주택을 처분하기로 했다. 해당 주택은 2024년 취득 당시 다주택자 중과세율이 적용돼 취득세가 3000만원을 넘었지만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서 감면받아 약 500만원을 납부했다.
그러나 매각 과정에서 당시 감면받은 취득세가 발목을 잡았다.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확인한 결과 다른 임대사업자에게 지위와 의무를 포괄 승계하더라도 10년의 의무임대기간을 채우기 전에 매각할 경우 감면세액이 추징된다. 여기에 가산액 등이 추가되면서 추가 납부액 규모가 이미 감면받은 세액을 넘어섰다. A씨는 결국 세금 추징액과 가산액 등을 매매가격에 반영한 후 다시 매수자를 찾기로 계획을 바꿨다.
현행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상 임대사업자는 의무임대기간 중 등록주택을 계속 임대해야 한다. 지자체의 허가 없이 임대사업자가 아닌 사람에게 주택을 매각하면 주택당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부도·파산 등 특별한 사유로 지자체의 허가를 받은 경우는 예외다.
지자체에 신고한 뒤 다른 임대사업자에게 양도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경우 매수자는 임대료 증액 제한과 임대보증금 보증 가입, 남은 의무임대기간 등 기존 사업자의 지위와 의무를 포괄 승계한다. 소유자는 바뀌지만 등록임대주택의 성격과 임차인 보호 의무는 그대로 유지되는 셈이다.
다만 취득세 감면은 다르게 적용된다. 지방세특례제한법은 의무임대기간에 주택을 매각·증여하면 원칙적으로 감면받은 취득세를 추징하도록 규정한다. 부도·파산 등 경제적 사정으로 허가받아 매각하는 예외적 경우에는 추징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지만 주택 수를 줄이거나 개인 사정으로 사업을 정리하는 경우는 예외를 인정받기 어렵다.
세제당국 입장에서는 취득세 감면이 해당 사업자가 의무임대기간을 직접 채우는 것을 전제로 한 혜택인 만큼 중도 매각 시 감면액을 추징하는 건 합당하다는 입장이다. 다른 사업자가 임대의무를 이어받더라도 감면받은 당사자는 더 이상 임대의무를 이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임대주택의 성격과 임차인 보호 의무가 유지되는 포괄 승계까지 일반 매각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제도 취지에 부합하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는 임대료 인상률을 연 5% 이내로 제한하고 일정 기간 임대를 유지하는 대신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다주택자의 절세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2020년 단기임대와 아파트 매입임대 등록이 폐지됐고 장기 유형의 의무임대기간은 10년으로 늘었다. 하지만 비아파트 공급이 급감하자 지난해 다세대·연립·오피스텔 등을 대상으로 6년 단기등록임대가 다시 도입됐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임대사업자의 지위와 의무가 다른 사업자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포괄 승계까지 취득세를 추징하는 것이 제도 취지에 맞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일반인에게 무단 매각하면 과태료를 물고 적법하게 임대사업을 승계해도 취득세가 추징되는 구조가 매물 잠김을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