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수십 년 보유한 A씨는 세제개편안에 따른 양도세 부담을 우려해 집을 매물로 내놨다. 시세보다 20억원 낮췄지만 매수 문의는 단 한 건에 그쳤다. 내년 말까지 매도할 계획이던 A씨는 가격을 더 낮출지 아니면 아예 매물을 거둬들일지 고민에 빠졌다.
서울 고가주택 시장에서 세금 부담에 집을 팔려는 소유자와 자금 부담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매수자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가격을 크게 낮춘 급매물은 일부 거래되지만 매수세가 확산되지는 않는 모습이다. 세제 강화 부담 속에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매물이 늘고 있지만 대출 규제로 매수 여력마저 줄어든 만큼 거래 위축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비강남권과 경기 남부에서는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는 반면 강남권 고가주택 시장에서는 거래 부진과 가격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세금 부담을 우려한 매도 물건이 나오지만 매수자가 관망하면서 대치·압구정동 일대 고가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매도 호가를 낮추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 추가적인 가격 조정 기대와 대출 규제 사이에서 대기 매수세는 한껏 위축된 상황이다.
강남에 아파트를 보유한 A씨는 "시세보다 낮게 매물을 내놓으면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아는 중개소 몇 군데에만 매물을 내놨다"면서 "(호가를 낮춰도) 집을 사겠다는 나서는 매수자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실제 강남권 고가 단지에서는 이전 실거래가보다 호가를 크게 낮춘 매물도 나오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1·2차 전용 131.48㎡는 올해 지난 7월만 해도 66억원에 거래됐지만 현재는 52억~53억원대 매물이 이른바 급매로 나와 있다. 이는 이전 거래가보다 13억~14억원 낮은 호가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전용 79㎡도 지난달 39억2700만~40억5700만원에 거래됐지만 현재는 37억원 급매물이 매수자를 찾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서울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저가 아파트의 강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강남권 집값은 동반 하락하고 있다. KB국민은행 KB부동산의 주간 아파트시장동향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강남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07% 하락했고 서초구는 보합에 그쳤다. 금천구(0.45%), 도봉구(0.43%), 노원구(0.41%), 강북구(0.38%) 등이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시가총액 상위 단지의 가격 흐름도 꺾였다. 지난달 KB선도아파트50지수는 99.2로 전월보다 0.22% 하락했다. 올해 3~5월 하락한 뒤 석 달 연속 올랐으나 지난달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이 지수는 매년 말 선정한 시가총액 상위 50개 아파트 단지의 월별 시가총액 변동을 보여준다.
고가주택은 가격을 낮춰도 매수세가 따라붙지 않는 모습이다. 대출, 세제 등 규제 불확실성이 여전한 데다 금리 상승도 부담이 되고 있다. 특히 대출 규제가 매수세에 큰 장벽이 되고 있다. 수도권·규제지역의 25억원 초과 주택은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최대 2억원에 불과하다. 40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려면 최대 한도로 대출을 받아도 38억원 이상을 자기 자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매수세가 실종된 가운데 강남권의 가격 약세가 또 다른 고가주택 밀집지역인 용산 등 한강벨트 지역으로 확산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고가 아파트로 갈아타려는 수요 유입이 제한되는 만큼 한강벨트 지역은 강남권과 당분간 가격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시장으로 꼽힌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 연구원은 "강남구 등 고가 아파트 시장에서 전반적인 매수자들의 관망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정책 불확실성과 금리 상승 가능성 등 거시경제 변수가 남아 있어 거래 둔화와 가격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