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부문 중심의 동행노조가 임금·단체협약 무효화를 촉구하며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올해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이 이미 타결된 상황에서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적법성을 둘러싼 논란도 확산하는 모습이다. 쟁의권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상 쟁의행위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동행노조는 21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에서 성과보상 체계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검은색 상의와 조끼를 입은 조합원 1800여명이 참석해 "같은 회사 같은 권리" "경영 실패 책임져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조합원들은 '직원은 권고사직 임원은 호의호식' '박학규 사퇴하라 정현호 사퇴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손종현 동행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회사는 때로는 한 회사, 불리할 때는 다른 회사라고 하며 경영 책임을 전 직원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분열의 틈에서 삼성전자를 이끈 선대 회장님의 유지인 '원 삼성(One Samsung)'을 되찾고 경영진의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동행노조는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DX부문이 소외됐다는 입장이다. 핵심 요구안은 임금협약 백지화와 DX부문 직원 1인당 자사주 1000주 수준의 보상이다. 동행노조 측은 "2011년부터 2025년까지 DX부문의 누적 매출은 2395조원, 영업이익은 221조원으로 DX부문이 창출한 현금흐름이 반도체 장기 투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며 "1인당 자사주 1000주 지급 요구는 지난 15년간 DX부문의 기여와 현재 사업부 간 보상 격차를 종합해 제시한 교섭 요구점"이라고 밝혔다.
다만 DX부문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한 상황에서 대규모 보상을 요구할 명분이 충분하냐는 비판도 나온다. 올해 상반기 DX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 늘었지만 시장 성장률에는 미치지 못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8조원)의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재료비 절감과 비용 효율화에도 전년 대비 4배 이상 오른 메모리 가격 부담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올해 임단협이 이미 타결된 상황에서 이번 집회를 둘러싼 '평화의무' 위반 논란도 제기된다. 평화의무는 단체협약 유효기간 중 이미 합의된 사항의 변경이나 폐지를 목적으로 파업·태업 등 쟁의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뜻한다. 삼성전자의 올해 임단협은 내년 2월28일까지 효력이 유지된다.
쟁의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사실상 집단행동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동행노조는 삼성전자 내 제2노조로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공동교섭단 참여 종료를 선언했다. 별도의 찬반투표와 노동위원회 조정 등 쟁의행위에 필요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행노조는 조합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회사 휴무제도를 활용한 집회인 만큼 쟁의행위나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반면 집회의 목적과 진행 방식에 따라 사실상의 쟁의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모든 임직원이 적자의 고통을 분담하고 위기 극복에 집중해야 할 엄정한 시기에 이 같은 시위는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며 "노조의 이기적인 행보는 노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악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