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설계·제조 데이터를 외부에 내보내지 않고 AI(인공지능)로 활용하는 자체 시스템 구축에 나선다. 반도체 공정이 복잡해질수록 늘어나는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개발 기간을 줄이고 제조 효율과 품질을 높이는 동시에 핵심 기술 유출 위험까지 낮추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8일(현지시간) 프랑스 미스트랄 AI와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에 특화된 자체 AI 모델을 공동 개발한다. 범용 AI를 가져다 쓰는 방식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축적한 반도체 설계·제조 데이터에 미스트랄 AI의 대형언어모델(LLM) 기술을 결합해 반도체 업무에 맞는 AI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반도체는 공정이 미세해지고 제품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설계와 제조 과정에서 처리해야 할 데이터도 늘어난다. 삼성전자는 자체 AI를 데이터 분석과 결함 예측, 공정 최적화 등에 순차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제조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이상 징후를 찾거나 공정 조건을 최적화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제조 효율과 품질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핵심은 AI 모델을 삼성전자 내부에서 운영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외부 클라우드를 거치지 않고 자체 서버와 데이터센터에서 AI를 구동하는 '온프레미스(On-Premises)' 방식을 적용한다. 반도체 설계도와 공정 조건 등 핵심 기술 데이터를 외부로 이전하지 않고 AI 학습과 분석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미스트랄 AI를 택한 것도 이 같은 보안 요구와 관련이 있다. 미스트랄 AI는 2023년 프랑스에서 구글 딥마인드와 메타 출신 연구진이 설립한 AI 스타트업이다. '미스트랄 라지(Mistral Large)'와 '믹스트랄(Mixtral)' 등 자체 LLM을 개발했으며 반도체와 금융 등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산업에 온프레미스 기반 맞춤형 AI를 구축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체 AI 적용 범위를 메모리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로직 등 DS부문 전반으로 넓힐 계획이다. 메모리 개발부터 시스템반도체 설계, 파운드리 제조까지 축적되는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사업별 개발·제조 효율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향후 고객과 파트너사까지 연결하는 AI 기반 반도체 생태계로 확대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미스트랄 AI에 대규모 지분 투자도 단행했다. 단순 기술 제휴를 넘어 장기적인 공동 기술 개발과 사업 협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미스트랄 AI가 AI 인프라 사업도 확대하고 있어 향후 삼성전자의 메모리·로직·파운드리 사업과 협력 영역도 넓어질 수 있다.
미스트랄 AI와의 협력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AI 기업과 접점을 확대하는 흐름의 연장선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오픈A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데 이어 지난 5월 앤트로픽의 시리즈 H 투자에도 참여했다. AI 기업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동시에 이들의 AI 기술을 반도체 연구개발과 제조에 활용하는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은 "반도체 설계와 제조의 복잡성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방대한 데이터를 안전하고 정교하게 활용하는 AI 역량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미스트랄 AI와 함께 반도체 산업에 특화된 AI 모델과 플랫폼을 구축해 AI 기반 반도체 혁신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