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 보호와 동의명령[MT시평/이상제]

이상제 FPRL 대표/대부금융연구소장
2026.10.02 02:00
이상제 FPRL 대표/대부금융연구소장

지난 8월 미국에서 메타가 47개 주 정부와 청소년 정신건강 피해 소송을 합의로 끝냈다. 최대 180억 달러(약 25조원)를 내고 청소년 이용시간 제한 등 설계 변경도 약속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주 정부와 화해 이후에도 학교와 개인이 낸 소송은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위법 인정은 없더라도 합의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관계는 후속 소송에서 원용할 수 있다. 미국은 포괄적 집단소송, 각 지역의 비슷한 사건을 병합 심리하는 MDL, 전체 합의 기준선과 화해 가능성을 타진하는 대표 시험재판, 그리고 징벌적 손해배상, 변호사 성공보수제, 패소하더라도 변호사 비용은 각자 부담하는 원칙(American rule) 등 촘촘한 사법·행정 장치가 더해져 개별 소비자라도 거대 기업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우리 금융소비자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검사·제재, 분쟁조정, 집단소송, 단체소송, 개인소송 어느 것도 피해 구제에 충분하지 않다. 검사 및 행정 제재는 위반자를 처벌할 뿐 손실을 직접 회복시켜주지 못하며, 과징금은 국고로 귀속된다. 분쟁조정은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하더라도 소액 사건에만 강제력을 가진다. 집단소송은 적용 범위와 참여 방법이 제한적이며, 단체소송은 행위 중지만 구할 뿐 피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개별 소송 역시 증거 수집과 패소자 부담 원칙 등 비용 면에서 장벽이 높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동의명령'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동의명령은 조사·검사를 받는 금융회사가 피해구제와 재발 방지책을 제시하고 당국이 이를 받아들이면, 합의 내용에 구속력을 부여하되 위법 여부는 확정하지 않고 신속히 종결하는 제도다. 금융당국은 입증 부담을 덜고 중대 사안에 집중할 수 있고, 금융회사는 비용과 평판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소비자는 조기에 실질적 배상을 받는다. 많은 나라가 선호하는 제재 수단이고, 이름은 나라마다 달라도 시정조치와 피해구제를 합의해 신속하게 사건을 종결한다는 취지는 같다. 우리도 공정거래 관련 법률에서 '동의의결'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직접 배상보다 기금 출연이나 사회공헌 사업이 시정 방안의 자리를 채우는 경우가 있다. 피해구제가 겉돌면 제도는 제재 책임을 흐리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금융 분야 동의명령 성패는 그 설계에 달렸다. 다행히 금융 분야는 불완전판매처럼 피해자와 손해액 특정이 비교적 쉽고, 배상비율 산정 실무도 축적돼 있다. 기금 출연이나 사회공헌은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하고, 협의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관계는 투명하게 공개해 후속 소송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열어둬야 한다. 다수 피해자가 반대할 경우 재검토하는 절차와 철저한 이행관리 수단도 필수적이다.

금융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이제는 단순한 처벌 중심에서 신속한 피해 회복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다. 금융소비자에게 중요한 것은 금융회사가 받는 징계 수위가 아니라, 잃어버린 피해를 언제 얼마를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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