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이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 해킹 사건의 배후로 북한이 지목된 데 대해 이틀 연속 담화를 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의 주요 외화 확보 수단으로 지목되는 가상자산 탈취 경로가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소행으로 확인될 경우 직접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해킹 문제가 향후 북미 대화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명운이 걸린 중간선거 기간 담화를 내 미국이 해킹 문제를 대북 압박 카드로 활용하거나 북미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가상자산 탈취 경로 차단 우려…추가 제재 명분 차단
김 부장은 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발표하고 바이낸스 해킹 사건을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일 북한 관련 의혹을 부인한 데 이어 이틀 만에 다시 김 부장 명의의 담화를 낸 것이다.
앞서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바이낸스에서 발생한 60억달러(약 8조5000억원) 이상의 가상자산 탈취 사건을 북한 해킹 조직 '트레이더트레이터(TraderTraitor)'의 소행으로 지목했다. FBI는 탈취 자금 세탁에 이용되는 가상자산 지갑 주소를 공개하고 관련 거래 차단을 촉구했다.
북한이 대규모 가상자산 해킹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FBI는 지난해 2월 21일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비트(Bybit)에서 발생한 약 15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탈취 사건도 같은 조직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김 부장 명의의 담화를 잇달아 발표한 배경에는 가상자산 해킹을 통한 외화 확보 경로가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먼저 나온다. 대북제재가 장기화한 상황에서 미국의 해킹 배후 지목이 자금세탁 경로 차단과 추가 금융제재로 이어지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 확보에도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을 국가 차원의 사이버 금융범죄 주체로 규정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맞서 추가 제재의 명분을 약화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해킹 의혹을 강하게 부인함으로써 북한의 불법 금융활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가 강화되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트럼프 직접 논의 언급…북미 대화 선결 조건화 경계
해킹 문제가 향후 북미 대화의 새로운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바이낸스 해킹 사건과 관련해 "북한의 소행인지는 모르지만, 그렇다면 북한과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장은 이날 담화에서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와 한미 연합군사연습, 대북제재, 인신매매보고서 등을 거론하며 미국의 대북정책 전반을 비판했다. 특히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포기가 모든 문제해결의 대전제이며 기본열쇠"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국의 압박에 대한 대응도 경고했다. 김 부장은 "우리의 반사적대응에서도 새로운 기록들이 창조되여야 마땅하다"면서도 "평화수호를 위한 선택지에는 분명 대화가 포함되여있지만 이는 우리에게 있어서 국가리익과 반드시 동일시되는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번 담화는 해킹 의혹에 대한 반박을 넘어 미국의 대북정책 전반을 비판하며 북미 대화의 조건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적대정책이 지속될 경우 군사적 대응 등 다른 선택지를 우선할 수 있다는 경고도 담겼다는 분석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 없이는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대화의 우선순위를 낮춘 만큼 미국의 압박이 지속될 경우 북미 대화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