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아들이, 지금은 '남편'이 때린다

이현수 기자, 조유진 기자
2026.09.08 14:34

노인학대 가해자 중 배우자 39.4%…매년 증가 추세
'부양 스트레스' 학대로 이어져…"경찰·노인 보호 기관 연계해야"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 없음./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7월 서울 서대문구 한 주택에서 80대 남성이 70대 아내를 방에 가둔 채 폭행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A씨는 아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못으로 박아 가둔 뒤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는 사건 당일 집을 빠져나와 이웃집으로 피신한 뒤 직접 경찰에 신고했고, 경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평소 아내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노년기 부부 사이에서 폭행 등 학대가 발생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자녀가 독립한 뒤 부부가 서로의 돌봄을 책임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돌봄 과정에서 쌓인 부담과 갈등이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인 부부간 폭력을 단순한 부부싸움으로 치부하지 않고 학대를 조기에 발견·예방할 수 있는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8일 보건복지부 '2025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학대 행위자 총 9346명 중 배우자가 3563명(39.4%)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아들(23.5%), 기관(18.9%) 등이 뒤를 이었다. 배우자가 학대 행위자인 경우에는 남성이 3047명(85.5%)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과거에는 아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배우자가 이를 앞질렀다. 2020년 학대 행위자 가운데 아들의 비중은 34.2%로 배우자(31.7%)보다 높았지만 2021년 배우자(29.1%)가 아들(27.2%)을 처음 넘어섰다. 이후 배우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학대가 발생한 가구 형태를 봐도 노인 부부 가구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 학대 피해노인의 가구 형태 가운데 노인 부부 가구는 42.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자녀 동거 가구가 27.7%, 노인 단독 가구가 15.8% 순이었다.

전체 노인학대 신고도 늘고 있다. 지난해 전국 지역노인보호전문기관 39곳에 접수된 노인학대 신고는 2만6578건으로 전년(2만2746건)보다 16.8% 증가했다.

노인학대 신고 건수, 2025년 노인학대 행위자/그래픽=이지혜

전문가들은 자녀와 떨어져 노인 부부끼리 생활하는 가구가 늘면서 외부 개입이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령 부부가 서로의 돌봄을 책임지는 과정에서 부양 부담과 갈등이 누적되지만, 가족 내부의 문제라는 인식 때문에 학대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주변에서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지난해 자녀와 동거하는 노인 부부 비율이 10% 이하로 떨어졌다"며 "특히 우리나라의 노인 가구는 젊은 세대와의 교류 없이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부부가 서로를 돌보는 과정에서 부양 부담이 누적되다 학대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상 가족 간 학대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단순한 부부싸움으로 치부하지 말고 지역사회에서 학대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피해 정도에 따라 유관기관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경찰의 초기 대응부터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전문적인 지원까지 이어지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도 "노인 부부가 서로에 대한 부양 스트레스를 쌓아두다가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학대가 의심되는 노인에 대해서는 경찰과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연계해 피해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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